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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의 설악’에서 만난 영국사의 천년 은행나무 [정용식의 내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㉓ 충북 영동 영국사(寧國寺)
고려시대 중창…천태종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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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식의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영국사의 상징 수령 천년의 은행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큰 산을 일컬어 태산(泰山)이라 한다. 중국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등장하는 ‘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도 그렇다. 태산(泰山)은 한 줌의 흙이라도 사양하지 않기에 큰 산이 될 수 있었다’는 내용으로 요즘으로 치면 ‘큰 지도자는 다름을 받아들여 모두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천태산’은 어감상 하늘과 맞닿은 듯해서 태산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살펴보니 충북 영동의 천태산이 715m로 가장 높고 경남 밀양과 양산에 걸쳐 있는 천태산은 631m이며 공주, 정읍, 화순의 천태산은 그보다 낮았다. 천태산으로 이름 붙여진 우리나라 5곳의 산이 모두 그리 높지 않다.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절강성의 불교성지 천태산(해발 1136m)도 아주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사실 중국과 우리나라 천태산은 ‘큰 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천태종(天台宗)과 연관되어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한글 이름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나타난 혼선이었다.

‘불국사는 불란서 사람이 영국사는 영국 사람이 지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다 만들어진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선 호국불교로서 의미가 강해 국(國)이 붙은 절들이 많다. 국가의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하는 수령 1000년의 은행나무가 있는 영동의 영국사(寧國寺)와 한국 천태종의 본산이라는 천태산을 봄꽃이 절정인 시점에 방문했다.

한국 천태종의 중심지, 영국사
영국사 가는 길에 만난 겹벚꽃 나무

충북 옥천 묘목시장을 지나 벚꽃 터널을 이룬 나지막한 밤티재(260m)를 넘어서면 영동군 양산면이 나온다. 묘목들은 봄맞이에 여념 없고 진분홍 꽃을 터뜨린 도로변 살구농장과 가로수 하얀 벚꽃이 어우러져 봄기운을 물씬 풍긴다. 좁다란 외길 따라 4km 정도를 오르면 천태산 중턱에 영국사가 나온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절 이름은 원래 국청사(國淸寺)였으나 훗날 홍건족의 난을 겪었던 고려 공민왕에 의하여 영국사로 고쳐 불리게 됐다.

중국 양무제 때 지자대사(智者大師, 538~597)는 뛰어난 설법으로 명성을 떨쳤고 38세쯤에 천태종을 성립하면서 국청사(國淸寺)를 절강성 천태산에 세웠다. 천태종은 대표적인 불교 종파의 하나로 불경 ‘법화경’과 2세기경 석가모니 사상을 재해석한 인도의 승려 용수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지자대사가 머물었던 산 이름을 따 천태종이라 했고 덕분에 천태산은 중국불교의 중요한 성지가 되었다.

우리나라 천태종도 고려시대 왕자 신분이었던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1055~1101)이 개성에 국청사를 창건(1097년)하고 천태종을 전파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의 공인된 하나의 종(宗)으로 정립되었다. 고려 왕사(王師)를 지냈던 원각국사(圓覺國師, 1119~1174)가 후에 고려 천태종을 발전시키고 요세(1163~1245)스님이 강진 백련사를 중심으로 백련결사(1232년)를 펼치면서 고려 후반기 불교의 중심 종파로 자리 잡았다. 이후 화엄종, 조계종 등과 선종(禪宗)으로 통합 조계종이 되면서 종파명이 오랫동안 사라졌다. 1970년 들어 고려시대 천태종을 근간으로 하는 천태종단이 설립되고 소백산 구인사를 총본산으로 포교 중이다.

원각국사는 영동에 있던 국청사를 중창하고 배후의 산 이름도 지륵산에서 천태산이라 변경해 천태종 포교 중심지로 삼았다.

국가의 안녕을 빌던 곳
충북 영국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고려 공민왕은 고려를 침입한 원나라 홍건적들이 황해도를 넘어 개경까지 육박하자(1361년 2차 침입) 안동으로 피했다. 충북 영동과 옥천 사이의 마니산성(馬尼山城)으로 피신하던 중에 영국사(당시엔 국청사)에 들러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며 불사를 올렸다. 절 가는 길에 물(금강 지류 호탄천)에 가로 막히자 칡덩굴로 다리를 만들어 기어이 건넜다고 한다. 그 뒤 마니산성의 근위병들이 홍건적을 함정에 빠뜨려 무찌르고 개경을 수복하여 난을 평정하자, 공민왕은 부처에 감사를 올리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했다. 기도를 올린 절 이름은 국청사에서 영국사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공민왕이 직접 쓴 현판도 남겼다. 칡넝쿨 다리를 만들어 천을 건넌 마을은 지금도 누교리(樓橋里)라고 불린다.

절 일주문은 관광버스 주차가 가능한 천태산 주차장에서 30여 분 정도 걸어 올라야 한다. 일주문을 지나 우측으로 가면 1000년 된 은행나무와 영국사가 등장한다. 좌측으로 향하면 삼단폭포를 지나 작은 봉우리 망탑봉으로 이어진다. 그곳에는 상어흔들바위와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천태산 정상을 바라보고 우뚝 서 있다. 길이가 8m, 무게가 10t이 된다는 영락없는 상어 모양의 바위는 사람이 흔들어도 움직인다 해서 흔들바위라는데 필자가 아무리 밀어도 흔들거리지 않았다.

영국사 초입에 서 있는 나무장승
상어모양의 흔들바위

1000년 된 은행나무와 주차장 앞에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누각 만세루를 지나면 곧바로 대웅전 앞마당이다. 초파일 준비로 번잡하지만 보물인 삼층석탑과 대웅전, 극락보전 삼신각이 한눈에 잡히는 아담한 사찰이다. 통일신라시대 말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은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4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비록 아담한 절이지만 삼층석탑, 승탑, 원각국사비(寧國寺圓覺國師碑) 등 보물 4점과 문화재, 천연기념물 등이 풍성하다.

영국사엔 벚꽃보다 늦게 핀다는 겹벚꽃나무 두 그루가 있어 지금쯤 만개했을까 싶었는데 벚꽃만이 만개하여 반긴다. 금잔디, 철쭉, 민들레 등이 어우러진 사찰은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특히 절의 벚꽃 터널은 눈부시게 환상적이었다.

영국사의 2층 누각인 만세루

‘충북의 설악’ 천태산

높이 715m의 천태산은 충북 영동군과 충남 금산군 경계에 서 있다. 높지 않고 크지도 않지만 아기자기하면서도 웅장한 바위와 수많은 나무가 조화를 이뤄 빚어낸 경치가 아름답다. 덕분에 ‘충북의 설악’이라는 별칭이 있다. 특히 금강을 주변으로 영동군 양산면의 아름다운 ‘양산팔경’이 이곳 천태산 영국사를 제1경으로 시작되고 많은 문화유적이 그 신비함을 더해주고 있어 등산 동호인들이 사랑하는 방문지다.

천태산 주차장부터 천천히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진주폭포와 삼단폭포 쪽으로 걸어 올라가도 되고 아님 영국사 주차장에서 출발해도 된다. 1000여년을 한결같이 이 산을 지켜온 영국사 은행나무 아래에서 천태산 등산로가 A코스와 C, D코스로 갈린다.

천태산 중턱에서 내려다 본 영국사

A코스(1.75km)는 짧지만 암릉 구간이라 정상까지 1시간 30분 소요된다. 바윗돌이 깔린 까다로운 코스지만 로프가 잘 설치되어 있고 암릉을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앞이 훤히 트여 사방으로 멋진 조망이 반긴다. 곳곳에 무리 지어 있는 진달래가 피로감을 풀어주면서도, 거친 바위를 밧줄로 오르는 긴장감과 힘겨움이 동시에 몰려온다.

이 코스에는 직벽암릉 75m 구간이 유명하다. 하지만 그간 사고가 있었던 듯 산행 금지 푯말이 붙어 있고 우회로 할 것을 요구한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이날 낮기온이 24도를 찍어 목이 금세 마르고, 단독 산행인지라 무서움도 살짝 느껴졌다.

천태산 정상에 있는 비석
천태산 정상의 풍경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은 올랐던 길(A코스)이 아닌 D코스를 택했다. 하마바위와 공릉능선, 그리고 전망석, 남고개를 지나는 2.8km 구간을 1시간 20여 분 만에 내려왔다. B코스는 폐쇄됐고 C코스는 사고 다발 구역이라는 표시가 있어 D코스를 택했다. 내려오는 길에 힘이 풀렸는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암릉과 암벽, 기괴한 바위들을 홀로 걷다보면 긴장되지만 큰 산이 아니어서 가족 단위의 가벼운 등산이 물론 가능하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무리가 없는 듯 정상에서 만난 다정한 젊은 연인들의 모습도 편안해 보인다. 등산도 하고 고찰 영국사도 둘러보고 1000년 은행나무의 기운도 받아 평생 인연으로 좋은 가정 꾸려가길 기원해 본다.

천년의 하세월, 영국사 상징 은행나무
영국사의 원각국사비(보물) 주변으로 봄꽃이 만개했다.

높이 31m, 둘레 11m의 수령 1000년의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원각국사가 절을 중창할 때 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연둣빛 싹들을 틔우기 전이라 고목의 스산함과 여러 상처의 고단함도 느껴지지만 꼿꼿한 기풍만은 세월을 초월하고 있다.

짙은 녹색의 싱그러움을 드러내는 한여름이나 단풍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 되면 절로 탄성이 나올 장관일 듯하다. 지난번 남양주 수종사를 찾았을 때 만난 500여 년 된 은행나무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신비로워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곽재구 '은행나무' 중

예로부터 은행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신목 역할을 하는 느티나무,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함께 가장 사랑받는 나무였다. 우리나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만 25그루에 이르고, 영국사를 비롯해 양평의 용문사, 금산의 보석사 은행나무 등 1000년 수령의 고목도 9그루나 된다. 대부분 국가나 마을에 재난이나 큰일이 있을 때 나무가 운다고 하거나 고승들이 땅에 세운 지팡이가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등 다양한 전설을 간직한 영목(靈木) 대접을 받는다. 생육에 강한 은행나무를 진화론자 찰스 다윈은 ‘살아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 불렀으며 히로시마 원폭(原爆)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도 은행나무라고 한다.

완연한 봄기운이 가득한 영국사 경내 풍경

영국사 가는 길에 여유가 있다면 옥천 묘목시장에 들러보고, 영동에 왔으면 노근리평화공원, 난계국악박물관, 월류봉, 물한계곡, 옥계폭포, 반야사, 와인터널 등도 함께 들러보면 좋겠다. 영동의 먹거리로 어죽, 송어회 등이 유명하다니 식도락을 만끽할 수도 있다.

영국사 주차장까지 5km 이상 가는 길에 식당이 없어 굶을 뻔했는데 다행히 염치불구 절밥 공양을 할 수 있었다. 사찰 안에서 여러 공사들이 진행 중이라 인부들을 위해 점심 장만을 많이 해두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그마한 사찰이지만 휴식형·체험형 템플스테이도 운영하고 있었다. 올 2월에 임명되었다는 현우 주지스님은 촌부처럼 소탈한 분이었다. 그는 “역사를 간직한 우리 불교문화가 현대적으로 국민들 속에 잘 스며들면 우리 정치나 경제도 잘 될 거다”고 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김구선생의 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글·사진 = ㈜헤럴드 정용식 상무

정리 = 박준규 기자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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