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한때 몸값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던 IT업계, 증권가 등의 화이트칼라 고소득 직장인들이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와 동부 뉴욕 등 해안가 대도시에서 축출되고 있다. 이들은 이 지역 고급 주택의 큰 손었지만, 이젠 줄어든 수입 때문에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화이트칼라의 수난은 ‘이주’로 끝나지 않는다. 경기 침체 이후 정리해고 대상이 된 화이트칼라에 대한 수요가 AI 기술 발전과 맞물리면서 과거 수준을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끝없이 나오는 중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국내 이주 인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친 이후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고소득 직장인 계층의 전입보다 전출이 더 많아졌다고 최근 보도했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과 같은 주요 해안 대도시에는 20세기와 21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좋은 기업과 교육기관이 늘고 이에 걸맞는 고소득층이 모여들었다. 이에 부의 집중 현상이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특히 생활비가 가장 높은 12개 대도시(거의 대부분이 해안 지역) 이주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지역 거주 대졸자의 소득은 증가한 반면, 학위가 없는 단순 근로자의 수는 계속해서 감소해왔다.
다른 미국의 내륙 지역과는 차별화된 생활 수준으로 ‘슈퍼스타 도시’라는 독자적인 계급으로 군림했었기에 이같은 변화는 더욱 충격을 안긴다.
하지만 이제 화이트칼라도 짐을 싼다는 것이 다르다. NYT는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로스앤젤레스, 워싱턴D.C 모두 대학교육을 받은 근로자의 순유출이 생기는 등 도시가 임계점을 지났다고 밝혔다.
해안 대도시를 떠난 이들은 대신 피닉스, 애틀랜타, 휴스턴, 탬파 등 번영하고 있지만 물가가 심하게 높지 않은 내륙 도시들로 점점 더 많이 이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메인주 포틀랜드,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과 같은 소도시로도 상당수가 유입됐다.
생활비를 줄이고자 소도시로 이주를 감행했지만, 앞으로의 생애 소득도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뒤덮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팬데믹 기간의 ‘잔치’가 끝나고 경기 침체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한순간에 정리해고 대상이 된 화이트칼라에 대한 수요가 AI 기술 발전 등 때문에 과거 수준으로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15일자 신문에서 보도했다.
경기 활성화에 힘입어 급격히 증가한 두터운 중간 사무·관리직이 이제는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긴축 그리고 이어질 경기침체 우려로 가장 먼저 기업 인사팀의 표적이 되고 있다.
실제로 비영리단체 ‘임플로이 아메리카’에 따르면 올해 3월에 마감된 2023년 회계연도 기간 화이트칼라 실업자는 15만명이 늘었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IT 분야의 정리해고는 1년 전에 비해 88%나 늘었고, 금융과 보험 업계의 정리해고는 55% 증가했다.
문제는 향후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채워질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의 상용화에 속도가 붙으면서 이 자리를 사람 대신 AI가 대체하는 미래가 점쳐지고 있다.
사무직 뿐만 아니라, 창의적 작품활동을 하는 직업군도 마찬가지다. 이달 초 미국 할리우드를 주 무대로 삼는 작가들이 파업했을 때, 오히려 AI가 빈 자리를 대체해 일자리를 영영 줄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이유인 즉슨, 현재 할리우드의 많은 TV 시리즈와 영화는 대부분 대동소이한 플롯의 구성을 따르기에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본격적으로 사용해서 줄거리나 전체 대본을 생성한 다음 작가를 고용해 수정하거나 보완하는 방식이 도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하는 일이 AI가 쓴 줄거리를 조금 더 자연스럽게 ‘각색’하는 정도로 치부되는 셈이다.
경찰 수사물과 같은 장르물의 경우는 더욱 이야기 구조가 공식화 되어있어서 상용화가 더 쉬울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스튜디오 제작사들 입장에서는 더욱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되며, 더 이상 작가에게 아이디어에 대한 대가를 높이 쳐 줄 유인 또한 사라지게 된다고 매체들은 보도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각종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의미하는 ‘블루칼라’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오는 2031년까지 식당 요리사와 패스트푸드 음식점 종업원, 화물 운송 등 1년에 3만2000달러(약 420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는 블루칼라 일자리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