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가나도 16강에 못 갔지만, 우루과이를 떨어뜨려서 무척 기쁘다." (가나 축구 팬)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펼쳐진 H조 3차전 가나와 우루과이의 맞대결은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었다. 한국은 이 덕분에 웃을 수 있었고, 우루과이는 이 때문에 경기를 리드하면서도 울어야 했다.
무엇보다 '가나 야신' 아티 지기의 선방이 빛났다. 우루과이는 전반 26분과 32분에 연달아 골을 터트렸다. 이제 마지막 한 방이 필요했다. 아직 후반전이 남았고, 추가 시간도 남았다. 우루과이는 들떴다. 그러나 2대0 스코어를 만든 이후부터 가나의 골망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우루과이가 연달아 회심의 일격을 날렸으나 아티 지기는 거듭 선방했다.
특히 후반전 추가시간 2분을 남겼을 때 아티 지기는 엄청난 슈팅을 수퍼 세이브했다. 원래 아티 지기는 1·2옵션 골키퍼가 아니었다. 조 월러콧(찰튼 애슬레틱), 리처드 오포리(올랜도 파이리츠)가 모두 부상을 당해 3옵션이었던 그가 골문을 지킨 것이다. 아티 지기는 마치 이기고 있는 팀처럼 골킥 상황에서 10~20초 가량 시간을 끌기도 했다.
또 다른 장면은 오토 아도 가나 감독이 경기 종료 1분을 앞두고 보란듯 선수를 교체한 것이다. 교체 과정은 느릿느릿 이뤄졌다. 돌아오는 선수, 투입되는 선수 모두 일부러 천천히 걷는 듯했다.
마지막 장면은 가나 응원단에 몰린 관중석에서 나왔다. 가나가 2대0으로 졌지만, 가나 응원단은 우루과이를 향해 "집으로 돌아가라", "이제 짐 싸라"고 야유했다. 가나는 패했지만, 우루과이의 16강 진출을 막은 것으로 충분히 기뻐하는 분위기였다.
우루과이의 핵심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는 같은 시간 한국과 포르투갈 전에서 한국의 역전골이 터진 순간 눈물도 터졌다.
수아레스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8강 가나전에서 1대1로 맞선 연장전 중 도미니카 아디이아의 헤더를 골키퍼도 아닌데 손으로 쳐내 막았다. 수아레스는 퇴장 당했다. 가나의 아사모아 기안은 페널티킥을 얻었으나 실축했고, 결국 우루과이는 승부차기 끝에 4강에 올랐다. 만약 가나가 이겼다면 아프리카 최초 4강의 역사를 쓸 수 있었다. 가나는 수아레스의 '악마의 손'을 잊지 않았다. 나나 아쿠포아도 가나 대통령도 "우리는 우루과이에 대한 복수를 12년동안 기다렸다. 이번에는 수아레스의 '손'이 가나를 방해하지 못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수아레스는 한국팀의 16강행 가능성이 높아지자 밀려오는 울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우루과이는 모두 H조에서 1승1무1패였다. 다만 한국과 다득점을 비교하면 우루과이가 밀렸다. 우루과이가 딱 한 골만 더 넣었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끝내 추가 득점에 실패했다.
가나는 우루과이를 상대로 12년 전 악연을 통쾌하게 복수했다.
경기 후 가나 수비수 대니얼 아마티는 "경기 중 우루과이가 1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동료들에게 '우리가 16강에 갈 수 없다면 우루과이도 못 가게 막자'고 얘기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