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칼부림 사건 난 영랑호에 또다른 난제
영랑호 산책로 주변은 산불로 흉가변한 별장 수십채…월하의 공동묘지 오명
김철수 속초시장 인공부교 설치에 반대하는 ‘영랑호를 지키기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 청원
[헤럴드경제(속초)=박정규 기자]얼마전 20대 커플에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속초 영랑호. 범인은 구속됐지만 영랑호에 또다른 암운이 들고있다.
신라 화랑이 머물렸다는 영랑호. 8000년 세월을 견디면서 천혜의 모습을 보존해온 영랑호에 김철수 속초시장의 인공 부교설치공사가 시작되면서 이를 막기위한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영랑호를 지키기위한 시민들과 부교설치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맞서면서 인구 8만 속초 여론은 둘로 쪼개졌다.
절차하자 등을 논외로 하더라도 영랑호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자연그대로 보존해서 후손에게 물러줘야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으로 말하는 영랑호이야기(멤버 458명)’는 관리자가 이를 저지하기위한 후원계좌를 모으고있다. 대부분의 멤버들은 인공부교 설치 이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리면서 아쉬워하고있다.
영랑호에는 얼마전 커플이 묻지마 흉기피습사건으로 어수선한 모습이다. 영랑호 산책로를 이용하던 시민들도 크게 줄었다. 속초시청은 CCTV와 조도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라는 지적도 적지않다. 화마가 영랑호 산책로 주변 수십채 별장을 삼키면서 흉가로 방치돼있다. ‘월하의 공동묘지’라는 오명까지 받고있다. 범죄발생위험이 높은 곳이 됐다.
6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동해안의 보물, 영랑호를 지켜주세요. 영랑호 개발, 왜 막아야 할까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게시됐다.
청원인은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란 자발적인 시민단체 모임 회원이다. 청원인은 5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열거했다. 그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국민들의 판단을 모아본다.
▶8000년 생명의 쉼터, 영랑호=영랑호는 동해안의 보물인 ‘석호’ 중 대표적인 호수이며,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자연호수이기도 합니다. ‘석호’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독특한 지형과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영랑호는 수달, 고니 등 수많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생물의 삶터. 철새들의 번식지이자 나그네 새들의 중간기착지,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속초시민을 위한 치유의 공간이 되어 왔습니 다. 환경부는 2008년 ‘석호 보호 정책’을 내놓고 영랑호를 ‘중점관리석호’로 지정, ‘석호 주변은 ‘생태계 핵심구역’으로 엄격한 보전 보호가 필요한 지역으로 신규 개발 행위에 대한 인허가는 원칙적으로 제한할 것’이라는 의견을 고수해왔습니다.
자연이 자연 그대로일 때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게 하는 곳, 영랑호에 속초시는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40억 규모의 공사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다리와 수변광장, 수많은 조명은 철새와 천연기념물들의 생태계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음에도 속초시는 ‘생태탐방로’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 영랑호를 인공화하고 있습니다. 환경부와 문화재청 등의 개발 제한 권고를 무시하고 불도저처럼 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절차 상의 하자·누락·왜곡=속초시는 ‘환경영향평가’에 해당하는 ‘일반해역이용협의서’에 ‘사업대상지 주변에 특이지형 및 보존가치가 있는 지형은 없다’고 서술, 필수사항인 물리환경조사를 2013~4년 속초해변조사 자료로 대체함으로써 자연석호 영랑호 생태계와 지형 보존을 위한 어떠한 의지도 갖고 있지 않음을 일찌감치 증명했습니다. 게다가 영랑호 생태탐방로 사업으로 얻게 될 37억 7천만원의 공유재산에 대한 공유재산관리계획의 시의회 의결을 누락한 채로 사업을 진행해 2년 뒤에 뒤늦게 시의회 의결을 받아냈습니다. 불법과 꼼수를 써서라도 사업을 감행하겠다는 걸까요? 이 외에도 용납할 수 없는 왜곡을 저질렀으나 어디에서도 제지당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정부 차원에서 동해안 석호보호 정책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영랑호 개발은 이미 얼마 남지 않은 천연석호들을 모두 개발의 위협에 밀어 넣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6개의 중점관리석호 중 하나였던 ‘송지호’에도 개발 계획이 발표됐으며, 화진포, 경포호 등 나머지 석호들도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언제까지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파괴를 방관할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환경부 차원에서 석호 보호 정책을 다시 세우고 개발을 금지하는 강력한 조항을 마련할 것을 촉구합니다. 왜 지금, 영랑호일까요?
▶바이러스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태적 전환’=영랑호는 우리나라 최초로 기후 변화 분석을 위한 꽃가루 분석이 이뤄진 곳이기도 합니다. 영랑호 밑바닥에 쌓인 퇴적물의 꽃가루 분석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기간(1만7000년)에 걸친 식생변천의 역사를 추정, 10,000∼6,700년 전 기온이 급속히 온난해졌음을 밝혔습니다. 영랑호는 속초시민의 쉼터이자, 생물 다양성의 원천이며 인류의 미래를 위한 정보의 보고입니다.‘자연은 원금은 그대로 두고 이자만 가져다 써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기후 위기, 생물다양성 위기는 모두 인간의 논리로 생태계를 함부로 침범함으로써 발생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경제 논리에 짓밟혀 한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자연 그대로에 대한 존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무차별적 개발 논리에 시민이 맞서야 할 때입니다=속초시민들은 450(2021년 10월 4일 기준)일째 거리에 나와 있습니다. 호수 하나 지키기 위해, 자연 그대로의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호수가 왜 그렇게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매일 아침, 해질녘, 봄여름가을겨울 영랑호에 갈 때마다, 자연의 치유력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영랑호를 개발로 몸살을 앓는 속초의 ‘마지막 생태 보루’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자연 그대로 즐길 권리’를 남겨 줄 수 있을까요? 자연을 그대로 둘 권리를 박탈당한 우리는 지금 생태계 침범으로 인해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영랑호를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주장이 하찮게 보인다면, 우리는 자연 파괴로 인한 위협으로부터 영영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바이러스 창궐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태백신’과 ‘생태 시대로의 전환’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이제는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자연은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공사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호수에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가 투하됐고, 영랑호를 사랑하는 속초시민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영랑호 개발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데크와 조명으로 장식된 호수는 청초호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7일 오전 10시 기준 해당 민원글에는 1230명이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