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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사과요? 아재 소리 듣지요” 뜨거운 한반도...‘작물지도’ 급변
대구 사과농가 100여가구로 축소
강원도 재배면적은 10년새 5배 ↑
망고·커피·올리브...아열대의 습격
수십년 뒤 쌀·옥수수 등 수확 급감
식량 안보 위협 극복방안 세워야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봐요. 떠나요 강원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 ‘제주도 푸른 밤’의 가사는 이번 세기 중반이 지나면 이렇게 바꿔불러야 할 지도 모른다. 감귤을 재배할 수 있는 곳이 북상해 2060년대에는 강원도 강릉, 삼척 등 해안에서 기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지난 100년간 한반도 평균 기온은 1.8℃ 상승했지만, 온난화 속도를 늦추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100년간은 5.7℃ 상승할 전망이다. 한라봉은 설악봉이나 태백봉으로 이름을 바꿔달아야 할 수도 있다.

▶사과, 인삼, 복숭아... 온난화에 강원도로 피서 = 농작지는 바야흐로 북진하고 있다. ‘사과’라는 단어에 조건반사적으로 ‘대구’를 떠올렸던 식의 기존 주산지 개념은 폐기될 상황이다. 대구에서 사과를 키우는 곳은 거의 사라져 팔공산 자락의 평강동 일대 100여 가구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생육기 평균 기온 15~18℃의 비교적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특성 때문이다.

최근 사과 재배지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곳은 강원도다. 통계청 농업면적조사에 따르면, 올해 강원도 사과 재배면적은 1610헥타르(㏊)로 2011년(321㏊)에 비해 10년새 5배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국 재배면적은 3만1167㏊에서 3만3439㏊로 7% 가량 늘었을 뿐이다.

인삼도 강원도 재배가 확산되고 있다. 1995년만 해도 충청도 금산, 음성, 괴산 등이 주산지였지만 2005년께 재배면적이 정점을 찍은 뒤 하락 중이다. 대신 강원도 홍천, 횡성, 춘천이나 경기도 이천, 연천 등의 재배면적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경북 청도의 특산물로 유명한 복숭아는 이제 강원도 춘천과 원주에서도 자라고, 경북 김천이 주산지였던 포도도 강원도 영월에서 터를 넓히고 있다. 심지어 아열대성 식물인 녹차나 바나나도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

반면 강원도 대표 작물인 고랭지배추의 재배 면적은 줄고 있다. 강원도 남부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은 1990년대 6653.5㏊에에서, 2000년대 5533.2㏊, 2010년대는 4488.8㏊로 감소했다.

▶망고·커피·올리브의 국산화... 남해안은 강원도의 미래다 = 강원도가 ‘사과 주산지’의 타이틀을 갖는 건 길어야 100년도 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추세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경우(대표농도경로 8.5) 이번 세기말 한반도 평균 기온은 16.7℃로 1981~2010년 평균(11℃)보다 5.7℃ 오를 전망인데, 이렇게 되면 강원도에서도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이 거의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이 농촌진흥청의 예상이다. 강원도 산간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 지역이 아열대 기후로 변경되기 때문이다.

남해안 일대는 이미 아열대 기후에 따른 농업 변화가 현실이 되고 있다. 지자체들은 아열대 작물 육성 계획을 수립하는 등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한반도 최남단인 전남 고흥에서는 중남미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에서나 재배되는 것으로 알려졌던 커피나 남유럽, 중동 등지에서 자라는 올리브를 생산하고 있다. 인근 해남에서는 바나나에 이어 파인애플 생산에 도전해 올해 첫 수확을 앞두고 있다.

농진청이 낸 ‘아열대 작물의 국내 재배 동향 및 주산지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아열대 과일 재배 면적은 2019년 170㏊로 2017년 109.4㏊에 비해 50% 이상 늘었으며, 망고(62㏊), 백향과(패션프루트·43.7㏊), 바나나(29.3㏊), 용과(26.6㏊) 순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전세계적 추세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와인의 주요 생산국이 기존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북미, 영국, 독일로 옮겨가고 있다. 남유럽은 풍부한 일조량과 건조한 기후로 질 좋은 와인용 포도 생산에 적합했는데, 고온다습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포도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는 이제 포도 대신 아보카도와 패션프루트를 키운다.

▶사과 대신 바나나 먹으면 된다?... 위협받는 식량 안보 = 문제는 이것이 작물의 대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온이 상승하면 이상기후가 일상화하고 병충해도 늘어 안정적 식량 생산이 어려워진다. 농촌진흥청은 21세기 말까지 쌀 수확량이 25% 이상 감소할 수 있으며, 옥수수는 10∼20%, 여름감자는 30% 이상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데이비드 바티스트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지구 평균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쌀, 밀, 옥수수 등 주요 작물 생산량이 16%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2020 글로벌 식량안보지수’(GFSI)에서 한국은 총점 72.1점(100점 만점)으로 조사 대상 113개국 중 29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009년 56.2%에서 2019년 45.8%로 낮아졌다.

식량위기를 막는 근본 해법은 탄소 배출을 줄여 온난화를 막는 것이지만, 개별 국가의 노력이나 한 순간의 조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온도, 습도 등을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팜이나 고온을 견딜 수 있는 품종 개발 등 기술을 통해 극복하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기초 곡물에 대한 국내 생산을 늘리고 여러 국가로부터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훈 기자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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