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②'기후 폭탄'의 시작…하얀 사과가 온다 [라스트 포레스트]
[라스트포레스트 - 빨간 사과의 죽음]
최근 열대야 현상 심각
빨갛던 사과들은 하얗게 익어
기후변화 여파…생산량과 품질 떨어지는 사과
2100년 후 '백두대간' 외 '생산 못한다' 우려도
심한 열대야 현상으로 인해 착색이 안되고 하얗게 익은 사과. [안경찬 PD/kcreator@heraldcorp.com]

'언뜻 보면 복숭아, 다시 보니 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갛게 익어야만 하는 표면은 하얬다. 원래는 둥그렇게 탐스러워야 할 껍질에는 불쑥 튀어나온 부분들이 많았다. 꼭지부분이 노랗게 익어버린 경우도 더러 있었다. 사과가 폭염에 타고, 서리에 얼고, 빗물에 젖은 흔적들이다.

사과가 죽어간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한반도에서 사과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더위와 함께 잦아진 이상기후 현상은 자리를 더욱 뺏는다. 앞으로 80여년 뒤 한반도에서 사과를 볼 수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올해 날씨는 사과에는 가혹한 생태조건이었다. 3~5월에는 서리로 인한 '냉해', 6~8월에는 역대급 긴 장마와 열대야, 9~10월에는 때아닌 태풍이 사과 과수원을 강타했다. 대구에서 만난 우희윤(64) 대구사과영농조합 대표가 "40년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올해만큼 작황이 이렇게 나쁜 것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자연재해가 4가지나 기승을 부리며, 시련을 준 건 올해가 처음이라고 한다.

참혹했던 올해의 기후변화에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헤럴드경제는 지난 10월 대구광역시와 경북 영주·영덕, 충북 제천·충주 등지를 찾았다. 때는 사과의 마지막 수확철. 사과가 가장 탐스럽게 익어야 하는 때인데도, 농민의 얼굴엔 그늘이 져 있었다.

대구, 경북 지역에 위치한 한 사과 과수원 모습. 착색이 잘 되지 않은 사과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 [사진=신보경 PD]

라스트 포레스트 : 빨간 사과의 죽음

"지난해를 100으로 봤을 때 올해는 70정도?"

대구 평광동에 위치한 우 대표의 과수원. 우 대표에게 올해 사과에 대해 묻자, 그는 굳은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이어 시든 잎을 떼기 시작한다. 우 대표 손 안의 시든 잎은 '녹색' 대신 '검은' 빛이 감돌았다. 우 대표는 이내 움켜쥔 손을 펼쳐 시든 잎들을 보여준다. "사과나무 잎을 보면 올해 작황을 알 수 있어요. 잎이 시든 나무의 과실은 품질이 나빠요."

시든잎은 광합성 능력이 떨어진다. 잎이 시든 나무, 잎이 듬성듬성한 나무에 달린 사과도 과실이 작고 힘이 없다. 같은 원리로 잎이 다 떨어져 버린 나무에서는 좋은 사과가 자라질 않는다.

사과가 하얘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착색이 잘 안 된 사과가 계속 늘어가고 있다. 사과는 과실의 크기와 착색, 당도 등의 요소를 통해 '특', '상', '보통'으로 나뉜다. 착색된 면적이 과피면적의 80% 이상이면 특, 70% 이상이면 상, 상에 미치지 못하면 보통으로 분류된다. 특 비중이 올해는 10~20%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원래는 특 비중이 전체 물량의 30% 수준인데, 올해는 24~27%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하얀 사과는 빨간 사과와 비교했을 때 '맛이 없다'. 광합성 물질이 사과에 축적이 못 되니 당도도 자연스레 떨어지는 것이다. 영양분도 빨간 사과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야간온도를 약 4도씨 낮춘 상황에서 재배한 사과(왼쪽)와 높인 상태에서 재배한 사과. [사진=농촌진흥청 제공]

"낮에 광합성을 해서 생성된 동화물질들이 밤에는 과실로 축적돼서 안토시아닌을 형성합니다. 헌데 밤에 날씨가 더우면 과일로 축적되기보단 나무의 호흡에 쓰입니다. 따뜻한 지역에서는 사과 착색이 잘 안되는 이유입니다." (권헌중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연구관)

대한민국 농촌진흥청은 최근 논문에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열대야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야간 저온 감소에 의한 사과의 착색 불량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우리보다 온난화 현상이 심한 일본에서는 정부기관이 앞장서 '킨슈'와 '베니미노리'라는 고온에서도 착색이 잘 되는 사과를 개발할 정도로 착색 문제가 심각하다.

10월 중순, 헤럴드경제가 찾은 대구와 경북 영주, 충북 제천의 과수농가에서도 착색이 나쁜 사과들을 상당수 발견할 수 있었다. 농민은 10월 들면서 '그나마' 착색이 좋아진 거라고 했다. "7~9월까지 너무 많은 비가 왔습니다. 그래서 사과나무 상태가 불량했어요. 착색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10월 들어서 날씨가 서늘해지더라고요. 잎이 있어야 착색이 되는 물질(안토시아닌)을 사과로 보내 주는데 잎이 없으니깐..." 우 대표가 혀끝을 찼다.

"낮밤 온도차가 심해야 당도가 높아지고 '깔(색)'도 잘나는데... 전반적인 온도상승으로 깔이 해마다 조금씩 떨어져요. 농민이 너무 힘듭니다." 충북 제천 사과농민 조영수(59) 씨도 한숨을 쉬었다.

사과 재배지역이 대구경북 지역에서 경기 북부와 강원 산간지역으로 이동하는 모습.[ 허연주, 변정하 디자이너]
山으로 北으로 쫓겨가는 사과들

"강원도에서는 정선·평창·인제·양구, 경기도 쪽으로는 파주·포천…"

경북 영주의 한 과수원. 권헌중 연구관이 '신(新) 사과산지'라며 강원도·경기도의 외곽 도시 이름을 나열했다. 과수원보다는 군부대나 스키장이 어울릴법한 도시들이다. "과거 사과 주산지였던 영천이나 대구, 인근 경산, 그런 지역에서는 사과재배면적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있더라도 산으로 이동합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사과 생산량은 1990년대 전국적으로 60만~70만 t 수준이었지만 그래프상에서 점차 우하향하는 모습을 보인다. 해마다 생산량이 들쭉날쭉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사과 작황은 크게 나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전국의 사과 생산량은 57만6369t에 달했다. 올해 사과 생산량은 여기서 약 21% 못 미치는 올해는 45만t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사과생산량 예상치는 45만톤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사과생산량, 대구지역의 사과 재배면적. [그래픽 제작=허연주, 변정하 디자이너]

"우리 농업인은 착색이 잘되고, 농사가 잘 되는 지역으로 찾아 과수원을 개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강원도. 그렇다보니 각 지역의 산간지역이 사과산지가 되고 있어요. 산지는 일반적으로 평지에서 기온이 2~3도 정도 낮기 때문입니다." 말을 마친 권 연구관은 과수원 옆 야산을 손으로 가리켰다. 가리킨 야산에는 사과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너무 산으로만 가도 안 좋아요. 날씨를 따라 험준한 산으로 가면 기계를 쓸 수가 없어요. 거기다 인력 수급도 잘 안 되고 하기 때문에... 너무 깊은 산으로 간 과수원은 도태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강원도로, 경기도로 자리를 옮기기도 하지요.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터전을 버리는 거죠." 40년간 사과농사를 지었다는 박재열 영주사과발전위원회 회장이 내용을 덧붙였다.

이는 지역별 생산량 변화로도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북 지역의 사과생산량은 지난 1995년 48만7700 t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지난해는 15만 t 못미치는 33만8085 t만이 생산됐다. 대구의 사과생산량은 지난해 378 t에 불과했다. 과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명성을 잃어가는 중이다. 반면에 강원도 사과생산량은 지난 2014년 이후로 크게 증가하는 모습이다. 당시 2225 t에 지나지 않았던 생산량은 2019년에는 1만486 t까지 치고 올랐다.

연도별 사과재배가능 지역 예상 범위. 점차 북쪽으로, 강원도 산간지역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작=허연주, 변정하 디자이너]

농촌진흥청이 내놓은 농업용 미래 상세전자기후도 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강원도 전역이 사과재배 적합지로 분류되는 반면 기존 사과 주산지인 대구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저위 생산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광역자치도 중 가장 사과 생산량이 많은 경북에서도 청송, 영양 등 일부 지역만이 재배적합지로 분류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100년이면 한반도에서는 사과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유엔 국제기후변화위원회(IPCC) 지구온난화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는 '국민 과일'인 사과는 오는 2100년에는 백두대간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는 작물이 된다. 그 자리는 키위나 멜론, 바나나 등 열대작물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서리 피해 등으로 노랗게 익은 사과.
복병 : 서리와 장마, 태풍

"봄동 상해를 입어서 꽃이 무수히 떨어지고. 여름에는 72일장마... 끝나니까 가을엔 태풍이 오더라고. 잎이 다 떨어지고, 바람이 부니까 낙과가 생기고, 사과는 '기스(흠집)'도 나고... 착색만이 문제가 아니고, 다른 기후변화도 큰 문제가 돼요."

충북 제천. 18년간 사과 농사를 했다는 조영수(59) 씨는 냉해를 입은 비정형과를 신중하게 하나하나 솎아냈다. 냉해 피해를 입은 사과는 꼭지 부분을 중심으로 색이 노랗고, 모양이 고르지 않으며, 울퉁불퉁하다. "우리 말로는 딱과라고 그래요. 날씨가 추우면 꽃이 수정이 잘 안되고, 한쪽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모양이 비뚤어지는 거지."

수확철을 맞아 조 씨는 과수원을 돌면서 상태가 나쁜 나무를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다. 비정형과를 딸 때면 조 씨의 미간에 주름이 지는 듯했다.

"봄에는 우박, 우박이 온 다음에 꽃이 필 때 냉해가 왔고. 또 그 그다음엔 또 긴 장마가 와서 수확량 감소와 착색 불량이 왔다든지... 이리 기상이변이 많이 온 해도 드물다니까."

박재열 회장은 "어떻게 사과가 붙어 있는 게 신기할 정도"라며 특별하게 '더더욱' 나빴던 올해 기후에 혀를 내두른다.

"기후를 믿을 수가 없어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기후변화가 찾아오고 있고요. 우리 일선 농가가 할 수 있는 여건은 약을 부지런히 치고, 수정이 안될때 인공수정을 해주고, 더 손을 들이는 것밖에 없어."

최근 기상 여건의 변화는 단순히 '날씨가 따뜻해지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해마다 이상 현상이 찾아오며 기후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요동치고 있다.

최근 요동치고 있는 한반도 기후. 지난 4년간 열대야 일수 그래프(왼쪽)와 올해 중부와 남부지역 평균 강우량. [허연주, 변정하 디자이너]

올해는 다른 해와 비교했을 때 유달리 장마가 길고 강수량도 많았다. 올해 장마철에만 중부지방에는 평균 851.7mm(강우일수 34.7일), 남부지방에는 평균 566.5mm(23.7일)의 비가 쏟아졌다. 지난 10년간 평균치인 중부지방 366.4mm(17.2일), 남부지방 348.6mm(17.1일)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가을철엔 태풍이 찾아왔다. 10월에만 7개의 태풍이 발생했는데, 이처럼 10월에 태풍이 잦았던 것은 지난 십수년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열대야'였다. 전국 평균치를 놓고 봤을 때 2016년과 2017년은 10.8일, 2018년은 17.7일, 2019년에는 11일의 열대야 피해가 있었다. 지난 1981년~2010년 새 전국 열대야 평균치는 5.3일. 많게는 2배 이상 열대야 피해가 많았던 것이다.

지역별로 봤을 때, 대구 지역에는 최근 서리 피해가 심하다. 지난해 봄철(3~5월)에만 11번의 서리가 대구 지역에 내렸다. 올해도 3~5월에 7번의 서리피해가 있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빨갛게 익지 못한 사과 모습. [사진=신보경 PD]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한 해 농사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점점 과수원에 누적이 되고 있다. 권헌중 연구관은 내년도 피해를 우려했다. "사과는 한 번 기상이 좋지 않으면 내년, 내 후년도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기상조건 악화로 잎이 많이 떨어지면 나무 자체가 건전하지 않은 상태가 되기에 내년도에도 작황이 나빠지는 것이죠. 올해 사과작황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내년도에도 과실은 썩 좋지 않은 상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반도 온난화로 2100년이면 재배가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사과. 이상기후가 누적된다면 더욱 빨리 식탁에서 종적을 감추게 될지도 모른다. '붉은빛'이 탐스러운 현재의 사과는 그보다 더 빨리 사라질 것이다.

유사이래, 사과는 대한민국에서는 국민 과일이었고, 전지구적으로 봤을 때도 '보편적인 작물'이다. 문학과 예술작품에서도 사과는 자주 등장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동화 '백설공주'나, 안데르센의 '썩은 사과'의 주제의식은 모두 '탐스렇게 잘 익은' 사과를 통해 풀린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주인공 미자가 시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빨갛게 익은' 사과를 매개로 그려진다. 빨간 사과는 정물화의 주된 소재가 되기도 한다.

우리 삶에서 사과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빨간 사과가 나중엔 하얘진다면? 먼 훗날 백설공주나 이창동의 '시'를 보게 될 미래 세대들은 작품의 메시지를 어떻게 이해할까?

빨갛게 잘 익은 사과(가운데)와 색이 잘 들지 않은 사과. [사진=안경찬 PD/kcreator@heraldcorp.com]

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라스트 포레스트 : 기후 '폭탄'의 시작…하얀 사과가 나타났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라스트 포레스트(Last Forest)

본 기획은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영상팀 기자, PD, 디자이너의 긴밀한 협업으로 만든 퀄리티 저널리즘 시리즈입니다. 본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기획=이정아·김성우 기자, 신보경 PD

취재·진행=김성우 기자

영상 구성·편집=안경찬 PD

영상 촬영=안경찬·신보경 PD

디자인=허연주·변정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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