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에서 가장 큰 변수는 ‘날씨’다. 날씨에 따라 고객들의 소비패턴이 조금씩 달라지다 보니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IBM 등 정보기술(IT) 업체들과 큰돈을 들여 기상 데이터 활용을 위한 업무 제휴를 맺는 것도 다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어떤 날씨가 유통업계의 매출에 도움이 될까. 계절에 맞게 여름에는 ‘쨍하게’ 덥고, 겨울에는 코끝이 ‘찡하게’ 추워야 좋다. 계절에 따른 날씨 차가 심하게 나야 사람들에게 새로 필요한 게 생기기 때문이다. 여름에 폭염이 이어져야 가전 양판점 한 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에어컨이 날게 돋친듯 팔리고, 음료 및 빙과업계에서도 제품들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겨울에는 한파주의보가 서너번은 발령돼야 사람들이 롱패딩이나 구스다운 점퍼 등 두꺼운 아우터를 산다.
날씨가 춥고 더운 날엔 대형마트나 복합 쇼핑몰에도 더위와 추위를 피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봄·가을에는 적당히 선선하고 맑은 날씨가 많아야 등산복 같은 아웃도어 제품이 잘 팔리고, 호텔이나 리조트 예약률이 높아진다.
이에 날씨가 사전 예측과 맞지 않거나 계절에 맞지 않게 어중간하면 그 시즌 장사는 별 볼일이 없이 끝난다. 특히 요즘처럼 이상기후가 이어지며 기상 예측이 어려운 시기엔 더욱 난감하다. 빅데이터 분석 기관들이 올해 유례없는 폭염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제 날씨는 장마가 몇 주간 이어지며 비만 주야장천 내렸다. 심지어 8월에는 장마에 태풍까지 이어지며 열흘 이상의 강우가 예상될 정도다.
덕분에 유통업계에서는 올해 여름 장사는 다 한 것이 아니냐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장맛비에 기온이 섭씨 25도 전후로 머물면서 에어컨 판매는 선선했던 지난해보다도 15~30% 줄었다. 음료 및 빙과업체들도 2년 전보다 제품 판매량이 10%가량 감소했다. 백화점들도 주말마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방문객이 10%가량 줄었고, 수영복·등산복 등 스포츠웨어 업체들은 여름 장사를 접고 할인 세일에 들어갔다. 그나마 제습기나 의류관리기의 매출이 다소 늘었지만, 전체 유통업계의 매출 감소분을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서울·수도권·강원에 이르는 중부권에 장맛비로 인한 물폭탄에 침수 및 인명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유통업계는 직접적인 침수피해를 겪은 곳이 많지는 않지만, 내리는 비만큼이나 고심은 더욱 깊어진 양상이다. 지난 6월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꺾였던 소비심리가 겨우 전년 수준으로 회복돼 이제 장사 좀 되나 싶었더니 비가 다시 고객들의 발목을 붙잡아 울상이다. 1~2분기에 이어 보복소비를 기대했던 3분기마저도 절반 이상은 장사를 못한 셈이다.
올해처럼 예상치 못한 대규모 변수가 줄줄이 이어져 어떤 노력도 통하지 않을 때는 버티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만큼 유통업계가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아직도 대형 유통업체를 시장을 손에 쥐고 갑질을 일삼는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듯하다. 개원한 지 보름밖에 안 된 21대 국회에 제출된 유통 규제 관련 법안은 20여건이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