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자발적 감축 '베스트 믹스'…사회적 비용 감축
지난 14일 오후 일본 도쿄청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구름 및 수증기에 가려 하얀 정상이 보이지는 않지만, 약 95㎞ 밖 후지산의 산자락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사진=최준선 기자/human@heraldcorp.com] |
[도쿄=헤럴드경제 최준선 기자] 일본 도쿄의 주요 전망대 중 한 곳인 도쿄도청 48층. 지난 14일 오후(현지시간) 전망대에 오르자 넓게 뻗은 도쿄 전경 위로 흐릿한 산자락이 보였다. 안내판을 보니 후지산 방향이다. 지도앱을 통해 측정한 직선거리는 약 95㎞. 서울 여의도에서 강원도 원주 치악산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얼마 전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이었던 여의도에서 고작 6㎞ 떨어진 남산 N서울타워마저 보이지 않던 기억과 비교가 됐다.
후지산을 본 것이 '행운'은 아니었다. 오후에 기온이 올라가면서 대기에 수증기가 퍼진 탓에, 오히려 지금은 시야를 가리고 있다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비가 내리지만 않으면, 오전에는 대부분 후지산의 하얀 정상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고 했다.
약 20년 전만 해도 도쿄의 하늘은 투명하지 않았다. 1999년 도쿄도 지사 선거에 나선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디젤 차량에서 나온 검뎅이를 페트병에 넣고 다니며 "도쿄에서 배기가스를 없애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199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의 PM10과 유사한 개념인 부유 입자상 물질(SPM)을 비롯해 일산화탄소(CO), 이산화황(SO2), 비메탄탄화수소(NMHC) 등 주요 대기오염 물질의 농도(연평균 기준)는 모두 지금보다 2배 이상이었다.
1999년 도쿄도는 사업용 디젤 차량에 미세먼지 저감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고,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유차의 경우 도내 주행을 금지하는 강력한 규제를 적용했다. [사진=도쿄도] |
2000년을 전후해 도쿄도의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이시하라 지사가 당선되자마자 시작된 1999년의 '디젤차 노(No) 작전'이 가장 큰 변곡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도쿄도는 도내에서 배출된 질소산화물(NOx)의 절반 가까이가 경유차에서 나온다는 근거를 토대로, 트럭, 버스, 냉동 컨테이너 차량과 같은 사업용 디젤 차량에 대한 강력한 규제안을 마련해, 2003년부터 본격 시행했다. 미세먼지 저감장치(DPF) 장착을 의무화하고,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유차의 경우 이미 운행되고 있던 차량을 포함해 아예 도내 주행을 금지했다.
도쿄도가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더라도 인근 지방자치단체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효과를 보장하기 어려웠다. 디젤 차량 운행량이 풍선 효과처럼 주변으로 밀려나 지자체 간 갈등을 유발할 소지도 있었다. 이에 도쿄도는 인접한 가나가와, 치바, 사이타마 등 세 개 현에 대한 설득 작업에 돌입했고, 결국 2003년 이들 지자체 모두 유사한 규제를 시행했다.
도쿄도 환경국 환경개선부의 타카하시 테루유키 대기보전과장은 "2002년 이전에는 0% 수준이었던 SPM 농도 환경기준 달성률(도로변 측정소 기준)이 2003년 처음으로 두자릿수로 올라섰고, 2005년부터는 줄곧 95~10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산화질소(NO2) 환경기준 달성률 또한 1990년대 대부분 10%대에 머물렀지만, 2003년 50%대로 올라선 뒤 급격히 개선돼 최근 10년 연속 90%대를 기록 중이다.
사실 도쿄도를 포함한 일본의 대기 환경 개선 노력은 'No 디젤 작전' 시행 수십 년 전부터 점진적으로 진행됐다. 전후 복구 과정을 지나 본격적인 경제 성장이 이뤄지던 1962년. 한국에서는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 나가는 그날'(박정희 전 대통령의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 중)에 대한 염원을 키우고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대기 오염 해결을 위한 매연규제법을 도입했다. 위반 정도에 따라 최고 형사적 제재까지 부과하는 내용이었다. 도쿄도의 매연방지 조례는 이보다 7년 빠른 1955년에 제정됐다.
규제는 점진적으로 적용됐고, 산업계는 기대 이상으로 참여했다. 초기 대기오염방지법은 배출을 억제해야 한다는 방향만 제시했을 뿐 처벌 수준은 강하지 않았다. 산업계에 대한 압박이 시작된 것은 1996년, 벤젠 등 장기 독성 오염물질을 규제 대상으로 포함시킨 뒤부터다. 정부가 11개 규제 대상 물질의 배출량 저감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 시 강력한 규제 조항을 마련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이에 산업계는 화학공업협회 등 단체를 중심으로 자체 목표치를 세웠고, 1997~2003년 자율 삭감 기간 동안 규제 대상 물질의 배출량을 무려 78% 감축했다.
1997년에 시행된 'PRTR(Pollutant Release and Transfer Registers) 법' 개념도. 이 법은 사업체로 하여금 폐기물로 방출되거나 이송되는 특정 화학 물질의 양을 추정하고 그 데이터를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정부는 배출량에 대한 의무 부과 없이 기업의 이름과 배출량만 공개함으로써 기업의 자주적 참여를 유도했다. [자료=일본 환경성] |
일본 산업환경관리협회(JEMAI)의 엔도 코타로 박사는 "정부는 기업들의 자발적 동참을 기다리고, 기업도 이에 적극 응해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축소하기 위한 상호 신뢰를 쌓았다"며 "PM2.5(초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휘발성 유기화학물(VOC) 감축 노력도 규제와 자주적 감축의 '베스트 믹스(best mix)'를 기본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 정부는 2004년 대기오염방지법을 개정하면서 VOC 배출 억제를 위한 내용을 담았는데, 법 개정 취지 달성을 위해 만들어진 논의 기구에는 40여개에 달하는 협회가 참여했다. 제도 도입 당시 정부의 목표는 2010년까지 VOC 배출량을 2000년 대비 30% 감축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감축량은 42%로 목표치를 웃돌았고, 2010년 이후로도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도쿄에서도 대기 오염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광화확 스모그의 원인물질인 오존의 농도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광화학 스모그는 눈과 목 따가움, 호흡 곤란, 기침 등을 일으킨다.
질소산화물(Nox)과 VOC는 햇빛에 의한 화학반응을 통해 오존을 형성하는데, 이 오존의 일부는 또 다른 오염물질과 2차 반응을 일으켜 미세입자를 만들고 광화학 스모그를 형성한다. 도쿄도는 1시간 평균 오존 농도가 0.06ppm 이내에 있어야 환경기준을 달성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도내 40여곳의 관측소 중 이 기준을 달성(연간 기준)한 곳은 수십 년째 한 곳도 없다. 오히려 최근 수년간은 주의보 발령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JEMAI 소속 다케우치 박사는 "원인 물질이 되는 VOC는 효과적으로 삭감해 왔지만, 정작 대기 오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오존은 원인물질 배출량이 단순히 감소한다고 같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VOC와 NOx의 절대적 배출량이나 두 물질 간의 비율에 따라 다른 민감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은 이미 20년 전이지만, 원인 물질 배출량과 비율을 지역별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하는 이상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탓에 아직 어느 국가도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도쿄도는 올해 광화학 스모그 주의보 발령 횟수를 0회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실제 달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그만큼 스모그 관리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도쿄도의 타카하시 과장은 "2030년까지는 전 관측소에서 오존 농도가 0.07ppm 이하로 측정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최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