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재활용 최우수 등급 왜? -기업들 친환경 노력, 환경부 개정안으로 물거품 -풍력선별 VS 비중분리, 24개 재활용업체가 좌우

뜯기 쉬운 페트병 비접착 에코절취선, 또 10년 미뤄지나…

[헤럴드경제=윤정희 기자] 전 세계가 친(親)환경을 넘어 필(必)환경의 시대에 발맞추고 있다. 환경의 중요성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상황이 됐다. 버려진 플라스틱이 미세한 입자로 조각나 해양생물과 나아가 다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 지구와 후손들을 위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최근 필환경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페트병은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용량도 엄청난데다 주재료인 PET는 완벽하게 재활용만 가능하다면, 환경오염을 제로화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연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페트병은 5000억개로 추산된다. 국내에서 한해 사용되는 페트병은 300억개.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뜯기 쉬운 에코 절취선 라벨, 보통 등급으로 전락 최근 페트병 재활용 대안으로 국민들에게 익히 알려진 것이 ‘에코 절취선 라벨’이다. 점선 모양의 이중 절취선을 넣어 소비자들이 라벨을 쉽게 분리할 수 있는 형태다. 서울시와 부산시 등 페트병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지자체들과 기업들이 바른미래당 하태경의원의 지적과 본지 보도 등 언론의 노력으로 지난해 에코 절취선 라벨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 아니 최소한 10년간은 에코 절취선 보다는 유해한 접착제를 사용하는 라벨이 국내에선 더 대접을 받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지난 4월 17일 환경부는 페트병 등 9개 포장재를 기존 1~3등급에서 ‘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 등 4등급으로 개정하는 고시안을 발표했다. 이중 최우수는 비중1 미만 비접착식 절취선 라벨로 규정했다. 유럽에는 이 조건을 만족하는 라벨이 다수 있다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현재 국내에선 ‘에코 절취선 라벨’로 불리는 비접착식 라벨은 대부분 비중이 ‘1.025’의 열수축 라벨이다. 비중이 1을 넘기 때문에 에코라는 명칭이 무색한 ‘보통’으로 분류된다. 업계에선 접착제를 쓰지 않기 위해선 열을 가해 수축하는 성질을 이용해야 하며, 이 때문에 지금까지 개발된 열수축라벨은 비중이 1.025라는 것이다.

비중을 1미만으로 낮추고 열수축을 해도 제조ㆍ유통과정에서 파손되지 않도록 만드는 기술이 현재까지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세척수가 일반 수돗물이고, 수산화나트륨을 첨가하며, 플레이크 형태로 절단시 절단면에 기포가 생겨 비중이 1.025라도 당연히 떠올라 비중분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과거 수분리성이라고 잘못 쓰여온, 열알카리성 분리가 가능한 접착제 라벨은 비중이 1미만이라서 ‘우수’로 분리된다. 우수 등급은 기업이 내야하는 분담금을 깎아주는 황송한 대접도 받는다. 수산화나트륨을 2% 넣은 양잿물을 90도 가까이 끓여서 접착제를 98%만 녹여 라벨을 분리하고, 엄청난 양의 폐수를 발생하는 라벨이 받기에는 그야말로 황송한 대접인 것이다.

뜯기 쉬운 페트병 비접착 에코절취선, 또 10년 미뤄지나…

▷환경부 ‘최우수 라벨’은 존재하나? 그렇다면 환경부가 다수 존재한다고 확인한, 유럽에서 사용한다는 최우수 라벨은 무엇인가? 우리도 도입하면 되지 않나? 당연하고 자연스런 의문에서 물어봤다.

환경부가 유럽에서 다수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최우수 라벨은 국내에 수입된 제품이 한가지가 있었다. 편의점에서 제품을 구입해 확인한 결과, 비중 1미만의 비접착식으로 열수축(PS재질)이 아닌 PE 재질의 스트레칭 라벨이었고 절취선은 없었다. 힘을 가하면 늘어나는 성질이 있어서 소비자가 분리하기 쉽도록 절취선을 넣기에는 부적합한 라벨이라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환경부는 이 제품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 절취선이 없어도 최우수 등급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소비자가 뜯어서 분리하긴 어려워도 재활용과정에서 완벽히 분리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현재 재활용 용이 등급(최우수+우수)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비중1 미만의 접착식 라벨이 유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업의 분담금 인센티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 라벨이 유일하게 된 셈이다.

현재 라벨 필름을 생산하는 업계에서는 페트병과 동일한 PET 재질의 라벨을 개발해 미국 등 해외에서 상용화 하는 등 노력을 해왔지만, 이 또한 보통 등급 이상을 받을 수 없게된 것이다. 라벨에 사용하는 특수한 잉크가 미국에서 특허를 받아 해외 유출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해당 업체와 상의해 국내기술로 이 잉크를 개발하고 있지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일본 등 비접착식 라벨 재활용 원사 식품용기 사용 현재 일본과 유럽 등에서는 재활용된 페트병 원사로 또다시 식품용기를 만들고 있다. 접착제를 쓰지 않은 비접착식 절취선 라벨을 풍력선별로 분리한 순수한 페트병의 경우, 식품용기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비중 분리를 고집하지 않기에 비중 1.025의 비접착식 열수축 라벨을 사용한 폐페트병이 최상급 식품용기로 재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업체들이 부산항을 통해 한해 수만톤씩 수입하고 있는 일본산 폐페트병이 바로 이것이다.

지난 2018년 한해동안 부산항을 통해 수입된 폐플라스틱 수입실적을 전수조사한 결과, 폐페트병만 전년대비 4배가 넘는 2만1752톤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같은 기간 부산항을 통해 수입된 폐페트병은 총 5343톤이었다. 2018년 수입된 2만1752톤을 15g 생수병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4억5000만개 분량이다. 중국의 재활용 쓰레기 수입 금지가 본격화된 2017년엔 전년대비 2배, 2018년에는 4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뜯기 쉬운 페트병 비접착 에코절취선, 또 10년 미뤄지나…

▷접착식 라벨ㆍ비중분리 우선 정책이 환경오염 유발 접착식 라벨과 비중 분리를 고집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도 심각한 상황이다. 국내 24개 재활용업체에서 1년간 처리하는 페트병은 총 26만여톤으로 이를 열세척ㆍ분리하기 위해 들어가는 LPG가 1만3700톤(146억원), 수산화나트륨이 4998톤(4억원), 연간 폐수발생량은 평균 세척횟수를 4회로 한다면 총 99만9600톤으로 추산된다. 흔히 양잿물로 불리는 이 폐수에는 접착제ㆍ잉크의 유해한 성분과 각종 유해환경물질이 가득 포함돼 있다. 재활용 과정에서 접착제를 녹여낸 수산화나트륨 수용액에서는 페놀이 기준치의 100배 가량 검출되고, 디클로로메탄, 톨루엔, 질산성질소 등이 검출돼, 산업용 폐수로 별도의 처리가 필요해 2차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 사용되는 라벨 접착제는 공업용 핫멜트 접착제로 고온(120~160도)으로 끓여 접착면에 도포하는 방식을 사용해 대기오염도 유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에는 탄화수소류(Hydrocarbon Resin)와 고농도 파라핀(Heavy Paraffin) 등이 포함되어 있어 대기 중 질소산화물과 반응해 광화학스모그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발생된 스모그, 초미세먼지는 호흡기와 피부를 통해 인체에 흡수될 경우,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독성화학물질이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잃어버린 10년, 또다시 잃어버릴지 모를 10년… 환경부는 과거 2008년부터 비접착식 라벨을 도입을 정책방향으로 정했다. 잘 진행되던 이 정책은 2014년 돌연 접착식 라벨과 비중분리를 우선하는 정책으로 뒤집어졌다. 그 이유로 접착제 업체와의 유착을 의심하는 환경단체의 눈초리도 매서웠다. 이유야 어떻든 비접착식 에코라벨을 도입할 기회가 10년동안 미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존재하지 않고, 개발도 요원한 최우수 등급을 표방한 환경부 개정안에는 ‘국내 재활용업체는 유럽과 같이 이물질 세척공정에서 라벨분리 용이성을 우선시하므로, 현행과 같이 비중기준을 기본으로 하되’라며, 모든 책임을 재활용업계에 미뤘다.

비중분리 우선 정책이 재활용업체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는 반론에 환경부는 조속히 24개 업체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하고, 공업용수나 수돗물에 수산화나트륨을 수용해 비중 1.025 열수축라벨의 비중분리가 가능한지 연구기관에 시험분석을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잃어버린 10년, 이번 환경부의 ‘포장재 재질ㆍ구조개선 등에 관한 기준’ 개정안으로 친환경 페트병 재활용 정착에 또다시 10년을 허비하지나 않을 지 국민들의 마음은 노심초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