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 북적…방문객 10~20% ↑ 장보기 기피…온라인몰로 대체 외출마저 꺼려…음식배달 불티 테이크아웃 전문점 매출 격감

東海까지 집어삼킨 미세먼지

경기도 일산에 사는 이모 씨(42)는 지난 3월 초 연휴에 광주에서 올라온 어머니, 조카와 함께 서울로 봄나들이를 가려 했지만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 결국 포기했다. 여덟살 조카에게 경복궁과 광화문을 보여주려 했지만 눈과 목을 아프게할 정도의 미세먼지 때문에 집 근처 복합쇼핑몰에서 식사하고 쇼핑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엿새 연속 한반도를 뒤덮은 초미세먼지가 한국인의 일상도 바꿔놓고 있다. 평년 기온을 3~5도 웃도는 포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제 방콕’은 일상이 됐다. 희뿌연 먼지 속에 감금당한 이들은 문 밖 외출에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보다 더하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모바일 앱으로 장을 보는 것은 일상이 됐다. 밀키트(반조리식품)로 저녁 식탁을 차리고, 이것도 모자라 아예 배달음식으로 연명하는 ‘강제 방콕족’이 늘고 있다.

초미세먼지가 한반도를 집어삼킨 6일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5곳에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강원도 영동지역에 사상 처음으로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가운데 강릉 시내 뒤 동해(바다)가 미세먼지로 보이지 않는다. [연합]

유모차를 끈 부부와 데이트 나온 연인들은 쇼핑몰 등 안으로만 꽁꽁 숨어들고 있다. 실내에서 조차 공기청정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희뿌연 하늘에 절망과 분노를 느끼는 이들은 다른 나라의 청명한 하늘 사진을 돌려 보며 위안(?)아닌 위안을 찾고 있다. ▶관련기사 3·9·10면 ▶야외 나들이 대신 복합쇼핑몰로=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주요 복합쇼핑몰은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던 지난 주말(1~3일) 방문객 수가 평시 주말에 비해 10~20% 가량 늘었다.

신세계프라퍼티가 운영하는 복합쇼핑몰 스타필드는 이 기간 방문객 수가 평균 10% 가량 늘었다. 스타필드 하남점은 하루 평균 11만명, 고양점은 9만명, 코엑스점은 7만명이 찾았다. 이는 평시 주말에 하남점 10만명, 고양점 8만명, 코엑스점 6만명 수준으로 방문하는 것에 비해 각각 1만명씩 늘어난 수준이다.

[미세먼지가 바꾼 라이프스타일] 봄 나들이 대신 ‘쇼핑몰’…외식 대신 ‘배달 음식’

같은 기간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방문객 수도 늘었다. 지난 1~3일 하루 평균 17만3000여명이 방문해 미세먼지가 거의 없었던 주말인 2월8~10일 평균 방문객 수 15만3000여명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기간(2018년 3월1~3일) 하루 평균 방문객 수(15만1000여명)와 비교해도 많은 수준이다. 돌을 앞둔 아이와 지난 5일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찾은 김혜영(37)씨는 “아이가 있다보니 미세먼지 걱정에 야외 활동이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며 “요즘 들어 자연스럽게 쇼핑몰을 많이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영향으로 쇼핑몰 내 키즈카페도 특수를 누렸다. 타임스퀘어 내 키즈카페 관계자는 “아무래도 미세먼지가 심할 때면 평소보다 손님이 많아진다”며 “지난 주말에는 신발장 열쇠가 모자랄 정도였다”고 말했다.

▶장보기 외출은 공포? 온라인 장보기 급증=희뿌연 하늘은 장보러 외출하는 것마저 공포스럽게 만든 모양새다. 온라인 장보기 수요도 지난 주말 급증했다. 이베이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3일 G마켓에선 마스크 등이 포함된 건강ㆍ의료용품 외에도 식품류, 음료류, 육아용품 등 장보기 상품군으로 분류되는 품목 대부분이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미세먼지가 거의 없었던 2월8~10일에 비해 건강ㆍ의료용품은 88%, 신선식품은 74% 스포츠의류ㆍ운동화는 24%, 육아용품은 16% 판매량이 늘었다.

티몬에서도 즉석 간편식과 조리도구 등을 중심으로 주문량이 평소보다 늘었다. 같은 기간 조리도구가 76%, 유아동의류와 용품이 71%, 즉석 간편식이 51% 매출 증가세를 보였다. 실내 놀이용 보드게임 매출이 60% 신장한 점도 눈에 띄었다.

▶외식보다는 배달주문으로=외출을 자제하는 가구가 늘면서 배달 음식과 밀키트(반조리식품) 주문량도 늘었다. 지난 1~3일 배달 앱 배달의민족 주문량은 334만건으로 직전 주말보다 7.5%(24만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기요 주문량은 미세먼지가 없었던 2월8~10일에 비해 25.4% 증가했다. 공휴일 특수를 감안하더라도 대개 기온이 오르면 외출이 늘어 배달 주문수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증가세는 미세먼지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같은 기간 GS리테일의 밀키트 브랜드 ‘심플리쿡’ 매출도 전월 동기에 비해 37.4% 신장했다.

▶푸드트럭은 발길 뚝, 공기청정 갖춘 카페는 발길 늘어=테이크아웃 전문점과 푸드트럭 등은 발길이 끊겼다. 서울 은평구에서 타코야끼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이모(32)씨는 “지난 주말엔 손님이 평소 절반 수준도 안됐다”며 “그마저도 다 포장 손님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공기청정 시스템을 잘 갖춘 식음료 매장을 찾는 발길은 평소보다 늘었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공기청정 시스템을 새롭게 설치해 리뉴얼한 매장의 경우 고객 유입량이 평균 8%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미세먼지에 취약한 어린이들로 병원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본지가 에이치플러스(H+) 양지병원의 최근 어린이 환자 내원객을 분석해본 결과, 0~15세 호흡기질환 환자는 2018년 1~2월 대비 2019년 1~2월 12.4% 증가했으며, 3월은 5일 기준 전년 3월1일~5일 대비 14.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혜미ㆍ박로명ㆍ이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