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꿀잠?…에어컨 20~25도로 설정하라

“야간고온 체온 높아져 각성상태 지속” 수영·걷기 등 유산소운동 숙면에 도움 술·담배·홍차·콜라·초콜릿 등은 방해

서울 용산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52) 씨는 요즘 중학교 3학년 막내아들과 함께, 또는 가끔은 혼자 아파트 인근 이촌한강공원에서 잠시 걷거나 텐트를 치고 한동안 시간을 보낸다. 잘 때도 있다. 여름밤 더위 때문에 생긴 불면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공원 온도는 아파트 거실보다 2∼3도 정도는 낮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어 “그나마 강바람이 솔솔 불어와 걷거나 누워 있으면 잠이 온다”며 “텐트 치고 있을 때에는 새벽에 추워서 침낭으로 들어가기도 한다”고 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열대야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2일 25.1였던 서울 지역의 최저기온은 이후 이어진 폭염 속에서도 열대야 기준인 25도를 웃돌지 않다가, 지난 22일 다시 25.3도로 치솟았다. 같은 날 오후 최고기온이 무려 38도를 기록한 다음날인 지난 23일 아침에는 최저기온이 29.2도나 됐다. 폭염은 앞으로 보름 이상 지속될 전망이어서 잠자기 힘든 ‘여름밤의 공포’도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가장 잠들기 적합한 온도는 18~23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열대야일 때는 이보다 온도가 높아 잠들기가 힘들어진다. 에어컨을 켜고 잠자리에 든다면 덥다고 에어컨을 너무 낮추지 말고, 평소 취침 온도보다 2~3도 높게 설정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의들은 조언한다.

열대야, 체온 높여 각성 상태로 잠 못들게 해=폭염으로 밤에도 높은 기온이 계속되면 잠들기 어렵고, 잠이 들어도 자주 깨 다음날 피곤이 계속되는 현상을 흔히 경험하게 된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취침 시 기온이 24도 이상이 되면 신체적 피로 회복에 중요한 깊은 잠인 델타수면이 감소하고 기억력, 학습 능력, 정신적 스트레스와 관련된 렘수면도 감소해 수면 중 깨는 횟수가 늘어나고, 자주 움직이게 되며 그 다음날 더 많은 꿈을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물론 더위 그 자체가 뇌의 온도를 높여 잠들기 어렵게 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람에게는 보통 자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체온이 낮은 시간이다. 그러나 열대야 현상으로 밤에도 고온이 지속되면 체온이 낮아지지 못하고 각성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며 “체온의 상승은 잠을 자고 깨는 시간을 결정해 주는 수면~각성 주기에 영향을 줘 규칙적인 수면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조깅ㆍ수영ㆍ걷기 등 유산소 운동, 숙면에 도움=여름철 열대야를 이기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장치가 바로 에어컨이다. 하지만 에어컨을 자칫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숙면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에어컨을 켜고 잘 때에는 설정 온도를 잠들기 좋은 온도(18~23도)보다 약간 2~3도 높게 설정해야 한다. 대개 에어컨은 높은 위치에 설치돼 있는데, 그 위치의 온도는 침대나 바닥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또 잠들고 1~2시간 경과 후에 에어컨이 멈추도록 타이머를 맞춰둬야 한다. 김의중 을지대 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밤새 에어컨이 작동되면 새벽녘에 체온이 떨어지면서 추위를 느끼게 되면서 순간 잠이 깰 때가 많다. 한 번 떨어진 체온은 잘 오르지 않기 때문에 다시 잠들기가 힘들다”고 했다.

오전 5시에 다시 에어컨이 가동될 수 있도록 타이머를 설정해 두면 좋다. 여름철 오전 5시는 외부 온도가 다시 상승하면서 더워지는 시간대다. 이것이 잠에서 일찍 깨게 되는 원인이 된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사용하게 도면 방충망이 있는 상태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선풍기를 작동시켜 놓으면 침실 내 열이 쌓이지 않아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이때 선풍기 바람이 몸에 직접 닿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규칙적 운동 역시 여름철 숙면에 도움이 된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운동 부족인 경우가 많다. 조깅, 수영, 자전거 타기, 걷기 등의 유산소 운동이 특히 수면에 좋다. 오 교수는 “적절한 운동은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이완을 돕는다”며 “불쾌지수가 높아지면서 짜증이 나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면 잠자는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단 지나치게 격렬한 운동은 좋지 않다.

김 교수는 “자기 직전에 하는 운동은 오히려 수면을 방해할 수 있으니 적어도 수면 2~3시간 전에 운동을 마치는 것이 좋다”면서도 “습도와 온도가 높을 때에는 운동을 삼가야 한다”고 했다. 잠자기 1~2시간 전에 미지근한 물로 목욕이나 샤워를 해도 숙면에 좋다. 몸의 열을 식혀 주고 피로를 풀어 줘 잠을 청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홍차ㆍ콜라ㆍ초콜릿ㆍ담배 등도 수면 방해=열대야로 인한 불면을 극복하려면 규칙적 생활을 통해 수면~각성 주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여름철 숙면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우선 지나친 낮잠은 피해야 한다. 간밤에 부족한 잠을 낮잠으로 보충하면 밤잠은 더욱 힘들어진다. 김 교수는 “개인에 따라 밤잠에 지장이 없다면 낮잠도 괜찮다”며 “너무 피곤하다면 15~30분의 가벼운 낮잠은 두뇌의 능률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잠들기 전 지나친 음식 섭취도 하지 말아야 한다. 배가 고파 잠을 이루기 어려울 경우에는 우유, 크래커 등 간식을 가볍게 먹는 것이 좋다. 많이 먹으면 위에 부담을 주어 오히려 잠들기 어렵게 할 수 있다. 수면을 방해하는 약물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 오 교수는 “음식물 중 잠자는데 도움을 주는 트립토판이라는 물질이 많이 함유된 우유, 치즈, 계란, 햄, 땅콩, 곡류, 열대 과일, 호두 등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여름에는 수면에 방해가 되는 카페인, 담배, 술은 줄이거나 끊어야 한다.

여름에는 각종 청량음료를 많이 마시게 된다. 하지만 카페인이 든 음료ㆍ식품, 커피, 홍자, 초콜릿, 콜라 등은 뇌를 깨우는 효과가 있어 수면을 방해하므로 오후 시간 이후에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간혹 술을 한잔 마시고 잠을 청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술을 마시면 잠이 잘 오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효과는 잠깐이고 오히려 수면 중간에 자주 깬다. 김 교수는 “맥주를 마시게 되면 소변이 잦아지면서 탈수 현상이 나타나고 그 결과 체온이 쉽게 올라간다”며 “음주는 열대야 효과를 배가시키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신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