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종 ‘등검은말벌’ 매년 기하급수 증가세 -8~10월 산란기…공격성 가장 높은 시기로 꼽혀 -독성은 토종 말벌보다 15배↑…사망 위험도 -정부 “이르면 내년 하반기쯤 교란 생물로 지정” -전문가 “하루 빨리 벌집 제거방안 연구해야”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9월 산란기를 맞아 더욱 강한 공격성을 지닌 벌 떼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외래종인 이른바 ‘살인 말벌’이 마구잡이로 나타나고 있어 추석맞이 벌초 길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19일 소방청에 따르면 벌 퇴치와 벌집제거를 위한 전국 소방관의 출동 건수는 지난 2014년 11만7534건, 2015년 12만8444건, 전년 17만8603건 등 매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올해에도 1~7월 기준 모두 4만7407건으로, 전년 동기(4만3859건) 대비 8.08%(3548건) 증가한 상황이다.

소방청은 이어 전년 수치를 분석해보니 전체 출동 건수 중 85.35%(15만2448건)이 7~9월에 몰려있었다고 전했다. 서울시소방재난본부 역시 지난 2012년부터 올해 8월까지 벌떼 출현으로 인한 출동 건수만 모두 4만2128건으로, 이 가운데 76.1%는 7~9월로 집중됐다고 밝혔다.

최근 기승을 부리면서 신고 건수를 늘리는 데 큰 역할 중인 ‘살인 말벌’은 ‘등검은말벌’의 별명이다.

다수 전문가에 따르면 지난 2003년 중국에서 우리나라 부산으로 유입된 등검은말벌은 무서운 번식력으로 현재 경기 북부지역까지 서식지를 넓힌 상황이다. 1개 벌집 안에 군체가 최대 1500~3000마리 서식하며, 번식기 땐 벌집 하나 당 출방(出房)하는 여왕벌 수가 300~500마리에 육박한다. 이는 일반 벌의 2배에 이르는 숫자다. 그러면서 꿀벌을 잡아먹고 토종 말벌과도 싸우면서 점차 한반도를 잠식하고 있다.

[‘위험천만’ 벌초 주의보②] 산길 가다 황천길로?…고개 드는 ‘살인 말벌’

문제는 번식력만 높은 게 아니라, 별명대로 일반 벌과는 비교 못할만큼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등검은말벌은 주로 땅 속 집을 짓는 토종 말벌과는 달리, 나무와 전봇대 등 높은 곳이라면 곧바로 집을 지어 사람들과 접촉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다 독성은 토종 말벌보다 15배 이상 강하며 호전적이기도 해 계속해서 소란을 일으킨다.

특히 벌초ㆍ성묘 등이 집중 이뤄지는 8~10월은 이들 산란기와 맞물린다. 이때는 더욱 난폭해져 ‘움직이는 지뢰’가 된다는 게 소방 관계자의 설명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올해 9월 초까지 벌 쏘임으로 최소 167명이 숨졌는데, 이 또한 상당수는 8~10월 추석맞이 벌초ㆍ성묘를 하다 나무 등에 달려있는 등검은말벌집을 건드린 게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등검은말벌의 번식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상청 기록을 보면 세계 평균 기온이 지난 100년간 약 0.7도 오를 때 우리나라는 불과 30년 만에 1.5도 상승했다. 최근에는 농촌진흥청도 기후 변화로 인해 국내 농경지 중 아열대지역 비중이 2020년 10.1%에서 2060년 26.6%로 40년간 16.5%포인트 오를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아열대종인 등검은말벌이 살기 좋은 환경이 한반도에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등검은말벌의 생태계 교란 생물 지정을 추진 중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등검은말벌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정밀조사가 이뤄지는 중”이라며 “피해가 확인될 시 이르면 내년 하반기쯤 (생태계 교란 생물로)지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등검은말벌을 처음 발견한 최문보 경북대 박사는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한다 해도 개체 수를 줄일 획기적인 방법이 연구되지 않는다면 모두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워낙 수가 많은 만큼 기존 ‘말벌 트랩’으로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아예 벌집 자체를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