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물은 근원적으로 흙에서 양분을 얻는다’

이 사실은 당연하지만 한편으론 놀랍고 신비롭게 여겨진다. 흙의 사전적 의미는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바위가 부스러져 생긴 가루인 무기물과 동식물에서 생긴 유기물이 섞여 이루어진 물질이다. 흙이 동식물과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이다. 즉 식물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흙이 생긴다. 지구가 탄생한 건 46억년전이지만 흙이 태어난 건 겨우 5억년전이다. 육지에 식물이 등장한 시기다.

흙의 시간 후지이 가즈미치 지음, 염혜은 옮김 눌와

일본 삼림종합연구소 후지이 가즈미치 연구원이 쓴 ‘흙의 시간’(눌와)은 흙이란 무엇인지, 공기처럼 의식하지 못하고 발을 딛고 있는 흙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심지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지 흙의 전모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가 전하는 흙이야기는 딱딱한 정보나 연구결과가 아니라 낙엽과 부엽토가 적당히 쌓인 흙처럼향기롭고 푹신하다. 가로 세로 뻗어나간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령 그는 흙이 조금씩 변화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진화론자로 잘 알려진 다윈의 독특한 실험을 들려준다. 지질학회 사무국장이기도 했던 다윈은 흙 연구에서도 역사적인 성과를 올렸다. 바로 ‘지렁이의 활동에 의한 비옥토의 형성’이란 저서다. 다윈은 잔디로 덮인 돌멩이가 지렁이의 똥 덩어리에 의해 땅 속으로 묻히는 모양을 명확하게 스케치했다. 흙이 만들어질 때까지 30년이나 기다린 후, 다윈은 1년에 2밀리미터의 토양이 지렁이의 활동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은하철도의 밤’으로 잘 알려진 미야자와 겐지의 산성토양 연구. 겐지는 농작물에 치명적인 도호쿠 지역의 산성토양을 바꿔 줄 석회비료 공장에 스카우트 돼 ‘비에도 지지 않고’(그의 시) 석회 비료를 팔러 다녔다.

흙과 생물의 공생기도 흥미롭다. 버섯과 공생하는 나무, 특이한 소화기능을 발달시킨 장수풍뎅이, 은행나무 열매를 먹는 공룡, 숲을 태우기도 하고 흙에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뿌리는 인간 등 흙과 생물의 5억년 발자취를 살필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이윤미 기자/me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