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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전근대 일본은 농민사회가 아니었다”
천황·무사·농민외 海民·상인 등 거주
열도내에 독립적인 왕권국가 존재도
선사시대 고립섬論 깨는 문화 소개

日중세사학자 아미노 역사교양서
기존 학설 뒤집는 신선한 시각 눈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신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영화 ‘모노노케 히메’에는 철의 마을 타타라바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인간이 신을 몰아내고 살기좋은 마을을 만들겠다고 신과의 싸움에 나선 마을이다. 여성과 상공업자, 히닌(非人) 등의 피차별민이 중심이 된 이 마을은 인간의 욕망이 강해지기 시작한 일본의 14세기 무로마치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천황과 무사, 농민 계층으로만 구분돼온 일본 사회구조에서 보면 낯선 설정을 두고 미야자키 감독은 농업 이외의 생업을 가진 서민을 그리는데 ‘아미노 사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에 걸쳐 배들이 일본과 중국 대륙 사이를 매우 활발히 왕래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놀랄 만큼 많은 전이 그 배들에 실려 들어왔음에 틀림없습니다. 이와 같은 전의 유입은 일본열도 사회 자체의 변화에 따라 생겨난 강렬한 수요를 대변해 주는 한편 그만큼의 전이 사회에 유통되기 시작했음을 뜻합니다.”(‘일본의 역사를 새로 읽는다’ 43쪽)

일본의 중세사학자 아미노 요시히코는 기존의 연대기적 역사 연구에서 벗어나 민속학과 문화인류학의 방법론과 성과를 접목하는 등 학제간 역사 연구 길을 낸 주인공이다. 이를 통해 그는 일본사에 만연해 있던 학문적 오류와 잘못된 상식을 지적해 일본사회에 충격을 준 바 있다.

‘일본의 역사를 새로 읽는다’(돌베개)는 그의 대표저서로 1991년과 1995년 출간된 전편과 속편을 묶어 2005년에 출간한 책으로 일본의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일본의 역사를 새로 읽는다/ 아미노 요시히코 지음, 임경택 옮김/ 돌베개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문명사의 결정적 대전환기를 14세기 무렵으로 지목한다. 남북조 동란기인 이 시기를 전후해 일본의 문화와 사회는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14세기를 경계로 상업, 교역, 금융의 존재 방식은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진다. 시장이 발달하고 상인이 세분화되며 이자를 받는 돈 거래가 활발해지게 된다. 상업적 교역은 이전에 신(神), 불(佛)을 통해 거래가 이뤄져 신비로운 요소가 있었으나 이 시기에 세속적 성격을 강하게 띠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종사자인 상인, 수공업자, 금융업자의 위상도 바뀐다. 저자는 이를 금속화폐(전)의 등장과 연결짓는다. 저자는 우리 신안앞바다 침몰선에서 발견된 28톤의 화폐 상당수가 일본으로 유입될 예정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또 다른 상식 파괴는 흔히 전근대 일본의 대다수가 농민이었다고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사료에 드러난 수많은 ‘하쿠쇼’(백성)를 관습적으로 농민의 동의어인 것처럼 오독했기 때문에 일어난 뿌리 깊은 오해라며, 해민(海民), 상인, 공업민, 편력민 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사회였다고 밝힌다.

일본의 여성과 상공업자가 자유롭고 존중받으며 살아가다가 중세 대전환기 이후 부정함과 악이라는 개념에 의해 규정되고 천시되는 과정을 살핀 것도 흥미롭다.

저자의 연구 중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일본이 천황 아래 유지된 단일 국가 체계도, 폐쇄적인 섬나라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본은 동서로 별개의 국가라해도 무방할 만큼 독립된 체계의 사회가 오랫동안 형성됐으며, 그 외에도 다수의 독립적인 왕권 국가가 열도 안에 동시에 존재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일본의 주류학은 일본의 선사시대인 조몬시대 만기 이후 야요이 시대(1~3세기)에 걸쳐 벼농사가 들어온 이후 벼농사를 중심으로 바다에 의해 주위와 격리된 섬들 안에서 자급자족한 고립 사회였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한반도의 동쪽 해안과 남쪽 해안으로부터 쓰시마, 이키, 기타큐슈 등에 걸친 지역에 공통된 문화, 즉 결합식 낚식바늘이나 마제 석기를 쓰고 소바타식 토기를 사용해 특유의 석기를 쓰는 어로민의 문화가 있었음을 소개하며, 조몬 시대 이래로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바다를 통한 아주 광역적인 사람의 왕래가 있었다고 밝힌다.

한반도와 일본의 역사 논쟁과 관련한 저자의 입장은 문화 교류의 큰 틀을 인정하면서 한일간 역사적 사실의 세부에선 비켜 서 있다. 일본의 ‘고립 섬’론의 경우, 쓰시마 섬을 찾아간 경험을 바탕으로 쓰시마에서 한반도가 바라보이는 거리는 어떤 형태로든 교류와 거래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편다. 뜨거운 고대사 논쟁을 불러온 가야 철기문명의 일본 전파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입장이다. 3세기부터 5세기까지 일본과 한반도, 중국 대륙과 사람, 물건의 교류가 매우 활발해졌고, 서족으로부터의 경로를 통해 다양한 기술이 규슈, 세토내해, 긴키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유입된 문화 중에서는 특히 말과 제철이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고 일컬어집니다. ‘기마민족’의 도래가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시기입니다. ‘민족’의 대거 도래가 아니더라도 문화로서의 마구나 승마 기술이 파상적으로 건너왔다는 건 틀림없습니다.”(249쪽)

이런 입장은 그의 전문분야가 아닌 탓도 있지만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이 다른 데 있다. 인간사회와 자연의 커다란 관계 전환에 입각해 사회와 역사를 구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 사회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는 현실에서 인간이 나아갈 길을 과거를 통해 조명해 본다는 점에서 그의 책은 흥미롭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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