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저는 전과자입니다. 비록 적은 돈을 벌고 있지만 죽는 날까지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그게 저를 받아준 사회에 대한 도리니까요.”

절도 등 전과 7범으로 복역하다 지난 2002년 출소한 이근수(72ㆍ가명)씨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팍팍해진 경제 사정으로 기부 자체가 줄어든 요즘 출소자들의 아름다운 기부 행진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이씨는 월급의 3분의 1을 매달 출소자 지원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명절이나 복날에는 고기나 떡 등을 보내고, 한달에 한번씩 직접 그들을 찾아 강연에 나서기도 한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기도 했다.

범죄자에서 기부천사로…‘주홍글씨’ 이겨낸 출소자들 -copy(o)1

이씨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기부할 수 있는 것은 누구보다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동안 이씨의 아내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출소 당시 59세였던 그는 “내일모레 환갑인데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령의 전과자에게 세상의 시선은 차가웠다. 이씨는 포기하지 않고 새벽 인력시장을 찾아다니며 악착같이 일을 했다. 사회의 도움도 받았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강원지부에서 숙식을 지원해줬고, 아파트 경비원 면접에서는 공단 직원이 직접 그의 보증을 서주기도 했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주변까지 구석구석 청소하는 성실함 덕분에 이후 주유소로 스카우트됐고, 남들이 은퇴하는 나이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일하는 중이다.

이씨는 “부끄러운 인생이지만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기부를 결정했다”며 “나누며 사는 것이 저를 다시 받아준 사회에 대한 도리이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웃었다.

김영훈(40ㆍ가명)씨는 젊은 시절 살인죄로 1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한 번의 실수로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놓이게 됐다. 후회와 자책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 교정 선교회 목사로부터 “가장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부터 김씨는 공부를 시작했다. 일과가 끝나고 새벽 3~4시까지 교과서에 열중한 그는 검정고시를 당당히 통과했고, 전문대에 합격해 매 학기마다 장학금을 받았다. 출소 이후에는 견실한 중견업체에 취직해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

김씨 역시 소년원 등을 대상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강연회에 나서고 있다. 김씨는 “심성 자체가 악한 사람은 없다”며 “주변에서 따뜻하게 보듬어줄 분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가 받았던 아픔과 사회의 도움을 이야기하고 그 사람들의 상처가 곪지 않고 아물수 있도록 약을 발라주고 반창고를 붙여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심리상담학을 공부해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