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020 노벨과학상’ 꿈

“2020년경에는 한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의 배출이 기대됩니다. 특히 생리의학 분야가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12년 전인 2007년 봄, 과학기술단체들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노벨과학문화워크숍’ 토론회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토론회에는 대학교수, 중고등학교 과학교사, 원로 과학자, 학부모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200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고시바 마사토시 일본 도쿄대 교수도 있었다. 당시는 정부가 인구, 경제규모, 군사력에서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모델로 삼아 과학부문에서도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목표로 설정하고 막 대중적인 홍보를 시작하던 때였다. 그러나 매스컴이나 국민들의 노벨과학상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다.

토론회에서 노벨과학상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나온 배경은 기초과학에 대한 당시 정부의 진흥 의지와 국가과학자 사업 등 우수과학자에 대한 정부의 포상제도 영향이 컸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한 조건으로 대학교육을 개혁하고, 우수한 과학자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고 창조적인 연구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들도 있었다. 성과주의, 결과주의를 강조하는 왜곡된 과학교육관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마디로 연구원들이 연구비 걱정 덜 하면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게 한다면 2020년쯤이면 노벨과학상도 가능할 거라는 얘기었다. 하지만 몇 차례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은 일관성을 잃었다. 과학계의 여건도 개선되지 않았다. 우선 정상급 과학자에 대한 대우가 소홀해졌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국가과학자 선정 사업은 2012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40세 미만 과학자에게 주는 ‘젊은과학자상’의 연구장려금은 대폭 쪼그라들었다. 연구원 연구비와 인건비 충당을 위해 국가 연구개발 프로젝트 수주에 매달리는 연구소들은 아직도 허다하다. 박사후 연구원을 위한 펠로우십 지원이 활성화 돼 있는 선진국들이 부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의 면면을 보면 상당수가 젊었을 때이거나 박사 후 연구원 시절에 이룬 업적들이 많다. 젊은 연구원들에 대한 탄탄한 후원은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도 아직 요원하다. 현 정부에서 연구자들은 청년실업률 해소를 위한 명목으로 ‘4차산업 인재양성사업’에 동원되고 있다. 연구자들이 교육자 역할까지 해야 한다. 실패를 인정하는 연구 체질도 몸에 배지 않았다. 몇년 전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한국인 유학생들은 요즘도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랩(연구실)에 남아 연구에 매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반대로 독일 친구들은 ‘칼퇴근’이 일상이라고 했다. 언뜻 보면 그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와 실수에서 배우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러기를 두려워한다.

10여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에 대한 관심은 물론 질타도 높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가로막는 장벽들은 더 높아지고 견고해졌다. 연구자 육성 시스템도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벨과학상에 가까운 과학자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희망’은 없고 ‘고문’만 주는 허상(虛像)인 이유다.  bon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