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6년, 막 소년티를 벗은 19살 청년이 LG전자의 전신 금성사에 용산공고 산학우수 장학생으로 입사했다. 그는 입사 후 기술이 일천했던 세탁기 설계실을 선뜻 자원했다. 당시엔 일본 세탁기 기술이 지배적이었던 터여서, 그의 자원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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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0년 후 그의 의외의 자원 덕에 2016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세탁기를 파는 회사를 가진 국가가 됐다. 올해로 입사 40년차가 되는 LG전자 조성진 사장의 이야기다. 조 사장은 1976년 한국의 세탁기 보급률이 1%도 안되던 시절, 금성사 세탁기 설계실엔지니어로 출발했다. 그는 한국에서 세탁기와 함께 한 명실상부한 ‘세탁기 1인자’다. 4000여개를 훌쩍 넘어서는 LG전자의 세탁기 관련 특허 건수도 사실 모두 그의 손에서 잉태된 것이나 다름 없다.

LG그룹이 조 사장의 손에 홈어플라이언스(HA) 부문을 모두 맡긴 것도 그의 열정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업계에서 조 사장은 기술 전문가로 통해 아래 직원들이 “그 부분은 기술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보고를 하지 못할만큼 해박한 기술 지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개발한 최고의 작품은 역시 ‘다이렉트 드라이브(DD) 시스템’이다. 모터에 벨트를 달아 세탁통을 돌리는 기존 방식을 벗어나 세탁통 바닥이 모터가 된 일체형 구조가 ‘DD 시스템’의 핵심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세탁이 가능하게 한 ‘6모션’ 등의 기술도 DD시스템 없이는 구현이 어려웠다. 세탁기 위에 카드 집을 쌓는 기네스 기록을 LG전자가 보유한 것도 DD시스템으로 구동되는 세탁기의 진동이 극히 적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9월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 “제가 이 달 말이면 LG전자에 몸 담은 지 40년이 된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불혹이다”고 말했다.

세탁기·초프리미엄 가전…‘LG맨 40년’ 조성진 신화는 계속된다

조 사장이 신임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LG전자의 가전 부문은 극적으로 성장해왔다. 특히 지난해 말 업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내놓은 초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시그니처’는 LG전자의 실적 효자로 급부상 했다. LG전자는 올해 2분기에 가전 제품 회사로는 달성키 어려운 1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지난해 2분기 대비 영업이익 성장률은 48.6%에 이른다. 조 사장은 ‘고졸 신화’로도 유명하다. 기술 부문 출신에 고졸 학력에도 불구하고 LG전자 내에서 사장이 된 신화적 존재다. 그가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끝없는 열정 때문이다. ‘그간 밤을 지세운 날이 며칠이냐’는 물음에 그는 “그걸 다 어떻게 셀 수 있겠느냐”고 되물은 적이 있다. 열정과 인내로 밤낮 가림없이 실력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조 사장은 없었을 것이다.

홍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