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32세 때 무과에 급제했지만 40이 넘도록 말단을 전전했다. 당시 조정의 중신이던 ‘10만 양병론’의 주인공 이율곡이 그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한 번 찾아오라는 기별을 보냈다. 하지만 이순신은 “같은 일가(덕수 이씨 집안) 사람인데 찾아다니면 공연히 말만 듣는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이순신의 후예’로 불리는 대한민국 군 수뇌부들은 요즘 이순신 장군을 뵐 낯이 없을 것 같다.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방위산업 비리 때문이다.

최윤희(62) 전 합참의장이 24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에 소환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군 서열 1위 합참의장 출신이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1996년 율곡사업(군 전력증강 사업) 비리에 연루됐던 이양호 전 국방장관 이후 두 번째다.

이날 오전 9시 51분께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 나타난 최 전 의장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짧게 말하고 조사실로 들어갔다.

합수단은 최 전 의장을 상대로 와일드캣 도입 과정에 개입했는지, 기종 선정 과정에서 대가성 금품이 오갔는지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최 전 의장은 사상 최초 해군 출신으로 합참의장에 임명된 인물이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특별한 배경과 인맥 없이 오직 능력만을 인정받아 군 최고위직까지 올랐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받게되면서 그의 군 인생에 가장 큰 오점이 남게됐다.

최 전 의장은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AW-159)’ 선정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었다. 와일드캣은 해군의 작전요구성능이 충족되지 않고 실물도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졸속 시험평가를 거쳐 도입이 결정됐다. 최 전 의장 또한 최종 결정권자로서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은 허술한 가족관리다. 와일드캣 도입을 중개한 ‘거물 무기상’ 함모(59)씨가 최 전 의장 부인과 빈번하게 접촉하고 음식점에서 식사 접대까지 한 정황이 포착됐다. 함씨는 개인 사업을 준비하던 최 전 의장의 아들에게도 2000만원을 빌려주고는 1500만원을 돌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검찰 앞에 선 이순신의 후예들-copy(o)1

정홍용 국방과학연구소장(59) 역시 자녀 유학비에 로비스트 자금이 흘러들어간 혐의로 지난 23일 합수단 수사를 받았다.

이들은 ‘억울하다’며 혐의를 부인하지만, 이미 진흙탕물이 튀고 말았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 끈도 고쳐쓰지 않는다’는 올곧은 충무공의 마음가짐이 더욱 그리운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