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조동석 기자]최수현<사진> 금융감독원장이 역공을 펼쳤다.
주 전산기 교체 파문과 도쿄지점 불법 대출 등과 관련해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중징계를 사전 통보하면서 징계수위에 자신감을 보였던 최 원장은 제재심의위원회의 경징계 결정으로 자존심을 구겼다. 제재당국의 무리수였다는 혹평도 나왔다.
금융감독당국 고위 관계자는 당시 “제재심의위의 결정을 번복한 적이 없다. 수용하는 게 관례다. 경징계로 최종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인 최 원장은 장고에 들어갔다. 징계수위 상향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여론의 동향을 살폈다. 금융권에선 이상기류가 흘렀다. 최 원장이 제재심의위 결정을 수용한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 까닭이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러는 가운데 KB금융에서 또다시 잡음이 일었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의 갈등이 다시 증폭된 것. 제재심의위의 경징계 결정이 나온 직후 열린 경영진의 템플스테이에서 예상하지 못한 의전 문제가 제기됐다.
국민은행은 이어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한 KB금융지주와 은행 임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봉합은커녕 갈등은 되레 커졌다. 이 행장은 이달 초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이사회의 재신임을 묻겠다”면서 공을 이사회로 넘겼다. KB금융 내부 문제는 경영진의 손을 떠났다. 그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금융당국은 이런 갈등을 최종 징계양형 결정의 판단 근거에 포함시키겠다고 압박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리스크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제재심의위의 경징계 결정에도 볼썽사나운 다툼을 지속적으로 벌이는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여론은 싸늘해졌다. 한 금융권 고위 인사는 “추락한 임 회장의 리더십과 이 행장의 돌출행동을 보면 리딩뱅크라는 수식어가 실망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조직은 안중에도 없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금융권의 관심은 최 원장에게 다시 집중됐다. 금융당국은 제재심의위에 올라간 개별 사안에다 이번에는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를 집중적으로 들여다 봤다. KB 사태의 심각성을 지배구조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금융기관의 건전경영을 심히 훼손하거나 중대한 손실을 초래한 경우’는 중징계 조건에 해당된다. 최 원장은 이를 파고 들었다.
최 원장은 4일 임 회장과 이 행장에 중징계(문책경고) 결정을 강행했다. 그러나 최 원장은 역대 금감원장으로는 처음으로 제재심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거센 후폭풍에 직면하게 됐다.
중징계 당사자의 반발과 그에 따른 소송 가능성, 제재심의 무용론, 관치금융 논란 등으로 한동안 금융계는 몸살을 앓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공은 KB로 넘어갔다. 두 사람이 임기를 채우겠다고 할지, 소송을 통해 자구책을 모색할지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