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家 기부가 남긴 숙제
법률상 상속·재산세, 부동산·주식 물납 허용
미술품의 경우 시장에서 되팔아 현금화 해야
상속세 무기 강요 대신 ‘자발 기부’ 장려 필요
英·佛 등은 소득·양도세 비용처리 반대급부도
삼성가(家)의 통 큰 기부가 남긴건 수 조 원에 달하는 미술·문화재만이 아니다. 미술품이나 문화재 상속에 대한 우리사회 시스템 전반의 숙제도 함께 남겼다.
가장 시급하게 언급되는 것은 미술품 물납제의 도입이다. 세금을 현금이 아닌 물건으로 낼 수 있는 물납제는 현행법상 상속세와 재산세에서 용인되고 있다. 다만, 그 대상이 부동산과 유가증권, 비상장주식으로 한정돼, 미술품의 경우는 시장에서 되팔아 현금화 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간송문화재단이 ‘운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고려 불상 2점을 경매에 부친일이 있었다. 미술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에서 미술품 물납제에 대한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이후 이광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11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을 발의하며 제도 개선에 시동을 걸었지만, 이후 이건희 컬렉션이 1호 수혜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에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가의 ‘기부’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 A씨는 “물납을 안 받아 주는 것 자체가 기부라는 선택지만 준 것이다. 기부하면 세금이 0원”이라며 “국가에서 못하는 세계적 컬렉션을 만들어 놓아도 이를 제대로 평가하거나 인정해 주지 않는데 누가 컬렉션을 하려고 하겠느냐”고 비판했다. 막대한 상속세를 무기로 ‘기부’를 강요하기 보다 자발적 기부가 활발해지도록 물납제, 세금감면 등 법·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술계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물납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 되기를 바라고 있다. 미술품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고 문화로 공적 부(富)를 축적한다면 미술시장 규모 자체가 커질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다. 한국화랑협회 관계자는 “미술품 물납제를 시행하고 있는 영국도 연간 600억원 정도 물납 받고 있다. 제도의 정착까지도 1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법적으로 상충되는 부분들을 면밀히 검토해 본격 도입하는 것을 서둘러야한다”고 말했다.
미술품 물납제 시행을 위해선 가치평가가 선결과제다. 시장에서 인정하는 사설 기관이 존재하지만, 같은 작품에 대해 진위가 갈리거나 평가한 가치가 너무 크게 차이가 나는 등 공신력 확보에 늘 문제가 있었다. 국가 공인 혹은 국가에서 제대로 된 미술품 감정인력을 양성해야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또한 상속시가 아닌 평시에도 기부가 활발해 질 수 있도록 관련제도를 개선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문화기증제도(The Cultural Gifts Scheme)이다.
소장가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할 경우 그만큼 소득세 혹은 양도소득세를 공제 또는 비용으로 처리해주는 제도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시행하고 있다. 물납제보다 진보적인 제도로, 소장가들에게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반대급부를 제공해 기부를 적극 유도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