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 40년 이끈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
“K미술시장 커지려면 대자본 들어와야 가능”
“소더비에서 서울옥션에 관심이 있는 것은 맞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는 물론 글로벌 미술시장이 활력을 잃어가는 만큼 성급하게 하기 보다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호재(69) 서울옥션 회장이자 가나아트센터 회장이 서울옥션 매각과 관련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시장에서 소문으로만 돌었던 ‘서울옥션 매각설’이 연기만 피운 게 아니라 군불도 지피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최근 가나아트 40주년을 맞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술시장이 더 커지려면 대자본이 들어와야 가능하다”며 “서울옥션이 그간 미술시장을 확대하는 선도적 역할을 해온 만큼 (서울옥션) 매각도 이같은 맥락에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회장은 국내 화랑 톱 3에 꼽히는 가나아트를 올해로 40년 간 이끌면서 국내 미술시장을 확대를 위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 회장은 지난 1983년 29살의 나이에 서울 인사동 가나화랑를 열면서 미술계에 뛰었다. 이후 국내 미술계가 ‘사업’을 넘어 ‘산업화’하는 과정에 이 회장의 가나아트와 서울옥션이 있었다.
이 회장이 미술계에 입문할 당시 주요 갤러리는 현대화랑, 진화랑, 동산방화랑 등이었다. 잘나가는 작가들은 모두 이들과 계약이 맺어진 상황. 이호재 회장은 가나화랑의 첫 전시로 ‘도입기의 서양화전’을 기획한다. 이인성, 이중섭, 박수근 등 작고 작가들로 꾸린 전시였다. 일찍 사업을 시작한 탓에 ‘대표’나 ‘사장’ 직함 대신 ‘상무’ 직함으로 사업을 해야 했던 신생 화랑의 선택이었다.
이후 이 회장과 처음 인연을 맺은 작가는 소산 박대성(78)이었다. 한국일보 앞 태인화랑에서 소산의 작품을 처음 본 그는 소산이 미술 비전공자라는 말을 듣고 동료애를 느꼈다.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화랑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미안했다”며 “미술계에 진 마음의 빚을 갚는다는 마음에서 전속 작가제도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때 이 회장은 박대성 작가의 수유리 화실을 찾아가 한 달에 30만원씩 주기로 하고 작품을 받아 판매했다. 이후 박대성 작가는 가나아트의 지원을 토대로 성장, 지난해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개인전을 열 정도로 국제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박 작가처럼 40년 간 가나아트와 전속 계약을 맺은 작가만 200여명이다.
이 회장이 꼽는 가나아트 대표 작가로는 첫 작가인 박대성과 함께 임옥상 등을 꼽는다. 그는 지난 1986년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소개로 서울미술관에서 열렸던 젊은 작가 전시에 갔다가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그는 “(전시관) 2층에 독수리 그림이 걸려있었는데, 스펙타클 하고 괜찮았다”며 “(임옥상 작가가) 당시 파리에 유학 중이라 작가의 얼굴도 모르고 작품 7점을 모두 샀다”고 말했다.
신생 화랑으로서 무리해서 산 임 작가의 작품은 작가와의 인연으로 맺어졌다. 이 회장은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임옥상)전시 하고 있는데, 그만큼 스케일이 큰 작가”라며 “박대성은 LACMA에서 3000호 크기 작업을 선보였는데, 이런 큰 그림들을 할 수 있는 작가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오수환, 박영남, 고영욱, 황재영... 나에게 귀한 작가들이다”고 말했다.
작가들 뿐 아니라 글로벌 화상들도 이 회장에게는 귀한 인연이다. 특히 스위스의 에른스트 바이엘러와 프랑스 남부의 매그(Maeght)파운데이션은 이 회장이 벤치마크를 할 정도로 이 회장의 경영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화상이 이러한 미술관으로 성장할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특히 바이엘러가 자신에게 조언한 “좋은 작고 작가 그림은 팔고, 그 돈으로 젊은 작가의 대표작을 사라. 명분도 얻고 실리도 얻을 것”이라는 조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첫 고객이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었다는 점은 나에겐 행운”이라며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만날 기회가 있어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매각 이슈로 화제가 되고 있는 서울옥션은 이 회장이 지난 1998년 국내 최초로 설립한 미술품 경매사다. 서울옥션은 지금까지도 케이옥션과 함께 ‘미술 경매 양대산맥’을 이루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사실 시작은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돈줄이 마른 고객들의 작품을 팔아주려고 만든,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그는 “1998년 IMF가 터지자 시장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며 “화랑 주인들이 화랑에서 고객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도망다녔는데, 그건 옛날에 산 그림을 팔아 달라고 할까봐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배경에서 국내 첫 미술 경매사인 서울옥션이 탄생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이 회장에게 최근 한국 미술시장의 급격한 성장은 또 다른 기회로 다가왔다. STO(토큰 증권)에 대한 관심도 크다. 그는 “미술시장이 커지려면 산업화가 필수”라며 “지금까지는 그림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 취향에 따라 구매했는데, STO 등이 시작되면 자산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더비와 같은 글로벌 경매사와의 협력이 필요한 이유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이 회장은 현재 화랑 사업은 큰아들인 이정용 대표에게, 경매 사업은 동생인 이옥경 대표에게 맡기고 있다. 대신 자신은 가나아트센터가 있는 서울 평창동 일대를 예술인 마을로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평창동에 프랑스의 파리국제예술공동체를 모델로 한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그는 40주년 기념전이 열리는 전시장에서 직접 컬렉션한 작품을 설명하면서 “여전히 작품이 좋다. 보고 또 봐도 좋다”며 “미술관을 짓기 위해 가나아트재단을 만든 게 2014년인데, 10년이 되는 해에 재단 이름으로 전시장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70세)’을 바라보는 이호재 회장, 그는 여전히 꿈꾸는 사람이다.
한편 가나아트는 올해 LA에 뷰잉룸을 오픈하는 등 국제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서울 한남동 등지에 흩어져 있는 전시장을 성수동으로 옮겨 새로 오픈할 예정이다. 이정용 가나아트 대표는 “해외 갤러리들이 공간성에 집중한 전시장을 많이 운영한다”며 “서울 도심에 그같은 곳을 찾다가 최근 성수동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일궈온 40년이 한국에서 미술을 산업 영역으로 확대했다면, 아들은 그 토대를 바탕으로 미술 시장을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