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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10억’ 독립영화의 도전…'항거' 조민호 감독 “인간 유관순을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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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주의’ 상업영화여야 성공한다는 편견…그렇지만 용기를 냈다”
-“1919년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100주년엔 돌아보길”

[사진=조민호 감독 제공]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유관순 열사의 서대문 형무소 수감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27일 개봉했다. 1919년 있었던 3ㆍ1운동 이후 100년만이다. 영화제작비는 10억원이다. 피끓는 애국주의는 절제했다. 대신 영화는 인간 유관순에 집중한다. 감독은 ‘유관순의 얼굴을 보려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개봉을 하루 앞둔 26일 조민호 감독을 서울 마포구 DMC첨단산업센터에서 만났다. 조 감독은 유관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넘쳐 흐르는 애국주의를 경계하는 일이었다고 운을 뗐다.

조 감독은 “죽어 잊혀진 사람들을 영화 속에서 부활시키고 지금의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지기 위해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 ‘항거’를 채우는 대부분의 장면은 흑백화면이다. 스토리 역시 좁디좁은 8호실 감옥에 모인 25명의 수감자들에게 집중된다. 6명이 들어갈 정도로 작은 감옥에 갇혀 앉을 자리조차 없이 서서 빙글빙글 돌아야했던 이들의 숨막히는 상황에 영화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잔잔하고 묵묵하게 진행되는 영화 속에서 주목할만한 장면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유관순(배우 고아성)의 눈빛이다. 그는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봤다면 알겠지만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눈빛이 아니다. ‘네가 뭔데 나를 보느냐. 그렇다면 나도 너를 똑바로 응시하겠다’는 눈빛이다. 패배와 한의 정서보다는 당당하고 건방진 호기심을 엿봤다”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제작까지는 부침도 많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순제작비 10억을 기준으로 독립예술영화 지원금을 받다보니 그 이상의 투자는 불가했다. 10억 이상이 들어가면 독립예술영화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조 감독은 그러나 영화에 모여든 스태프는 여느 초호화 상업영화 못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미술과 분장에 조상경, 황현규, 촬영감독으로는 최상호 감독이 와줬다”고 했다.

부족한 자료를 수집하고 고증을 철저히 하는 일은 조 감독의 몫이었다. 그는 이번 영화를 위해 1919년에 감옥에 수감됐던 여성들의 기록카드를 전부 뒤졌다. 묵혀진 역사 속에서 그가 솎아낸 인물들의 이야기는 영화에 고스란히 재현됐다. 그는 “임신한 채 감옥에 있다가 나와서 출산한 여성도 있다면 믿어지나. 유관순 열사가 겨울에 기저귀를 옷 속에 넣고 체온으로 말려줬다는 일화는 실화를 반영한 것”이라며 “기생으로 나오는 김향화 역시 실제 수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나 좋다는 사람 다 술 따라줬다. 왜놈만 빼고’라는 대사 역시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관객들이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근대를 향한 열망’의 목소리도 주목하기를 바랐다. 영화의 주요 갈등 축은 ‘제국주의 대 유관순’이지만 감옥 안의 기생과 지식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계급적 차이와 경계는 봉건사회의 잔재이기도 하다.

조 감독은 “3ㆍ1운동은 단순히 조국의 독립운동에 파묻힌 게 아니라 근대 사회로 넘어오는 목소리였다. 자유와 평등을 외쳤고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봉건주의에서 해방되려는 열망을 보여줬다. 끊임없이 계급을 나누고 근대화와 민주화, 자유화와 평등을 억압했던 일본을 향한 또다른 저항”이라고 설명했다.

kace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