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고·지휘통제실 등 군 시설에 지하경제 통로 역할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이스라엘군(IDF)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궁극적으로 파괴하기 위해서는 결국 가자지구 지하터널(땅굴)을 공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가 수십 년간 공들여 구축한 지하터널은 무기고와 지휘통제체계가 집중된 군사시설인 동시에 각종 물자 밀수 등 지하경제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은 29일(현지시간) 오후 국경과 수백m 거리의 터널 입구에서 땅굴을 빠져나온 하마스 대원들과 총격전을 벌여 다수를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군은 앞서 지난 27일까지 사흘 연속 가자지구 북부에서 지상작전을 벌여 가자시티 남쪽과 북쪽 인근 일부 지역을 장악하며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전쟁의 ‘두 번째 단계’를 선언하기 하루 전인 27일 하마스가 구축한 터널망이 광범위해 지상전이 길고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스라엘 측은 하마스가 터널에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 발전기를 사용한다거나 가자지구 최대 병원인 시파 병원 지하에 하마스 사령부가 있다고 주장하며 지하터널에 대한 경계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하마스의 지하터널이 밀입국과 밀수 통로로 사용됐을 뿐 아니라 가자지구에서 작전을 수행하려는 IDF에 심각한 장애물로 여겨져 왔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의 설명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지하터널은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된다.
이집트와 연결돼 무기와 다른 물자들을 몰래 들여오기 위한 땅굴은 하마스가 통제한다. 밀수품에서 얻는 이익을 일부 챙기는 대가로 하마스와 다른 무장세력이 운영을 허용한 상업용 땅굴도 있다.
전투용 땅굴은 이스라엘에 침투하며 진지에 폭발물을 설치하거나 이스라엘 병사를 납치하는 용도로 쓰인다. 하마스에 5년간 억류됐다가 2011년 팔레스타인 재소자 1000여명과 맞교환 석방된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도 땅굴을 통해 납치됐다.
이집트와 연결된 밀수용 땅굴은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거미줄처럼 연결된 현재의 터널망이 구축된 건 2005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이후다.
하마스는 조립식 콘크리트 패널로 터널의 규격을 높이 6피트(약 1.8m), 폭 3피트(약 0.9m)로 표준화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2014년 연구에 따르면 하마스는 당시 지하터널 건설에 900명을 상시 고용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이스라엘이 10년 가까이 땅굴을 파괴하려고 애썼지만, 제한적으로만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2021년 ‘11일 전쟁’ 당시 60마일(약 97㎞)의 지하터널을 발견하고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해 하마스가 '가자 지하철'을 300마일(약 482㎞) 이상으로 확장했다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땅굴 탐지·파괴를 전담하는 '야할롬', 터널 내 지리파악 로봇을 갖추고 지하 전투 훈련을 받은 '사무르' 등 하마스의 지하터널을 겨냥한 특수부대를 운용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땅굴을 손쉽게 파괴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는 드물다.
미 육군사관학교 현대전연구소의 존 스펜서는 “터널의 깊이와 환기 상태에 따라 산소 탱크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을 수도 있다”며 “위성이나 가시선(line of sight) 신호에 의존하는 군용 내비게이션과 통신장비는 지하에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터널의 좁은 공간에서 무기를 사용하는 경우 심지어 소총 격발 만으로도 뇌진탕 같은 물리적 피해를 볼 수 있다”며 “한 명이 훨씬 우세한 전력에 맞서 좁은 터널을 지킬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위험 탓에 이스라엘군이 터널에 침투하기보다는 지하 구조물 파괴용 폭탄인 ‘벙커 버스터’나 일명 ‘스펀지 폭탄’으로 하마스 땅굴을 무력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스펀지 폭탄을 투척하면 폭발하는 대신 액체가 부풀어 오르며 단단해져 땅굴 입구와 틈새를 막을 수 있다. 스펜서는 이스라엘군이 2021년 스펀지 폭탄을 썼고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땅굴에 내려갈 필요 없이 신속하게 봉쇄하는 매우 간단한 혁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