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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스크걸’ 고현정, 역대급 변신과 열연, 그리고 역대급 솔직한 인터뷰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8월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스크걸’이 공개 2주차에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30일 현재 한국과 캐나다, 프랑스, 이집트, 홍콩 등 72개 국가 TOP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인물들이 긴박한 상황에서 생생한 감정을 통해 내면의 뒤틀린 욕망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모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리기 위해 1인 3역이 됐다. 젊은 회사원 김모미는 신인배우 이한별이, 성형수술후의 쇼걸 김모미는 나나가, 중년 김모미는 고현정이 각각 맡았다. 특히 세 번째 김모미를 연기한 고현정은 30년 연기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마지막 부분을 채워나갔다. 고현정은 대사도 절제돼 있는 가운데서도 또 다른 인생작이 경신됐다고 할만한 열연을 펼쳤다.

죄수복을 입은 채 아무렇게나 싹둑 자른 듯한 짧은 머리와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로 등장한 고현정은 변모하는 상황 속에서의 복합적인 감정들을 시시각각 눈빛으로 담아내며 강렬한 몰입감을 안겼다. 무미건조한 말투와 몸짓으로 어떠한 욕망도 삶의 희망도 없이 모든 것을 초연한 수감자 ‘김모미’의 현재를 공허한 눈빛으로, 탈옥을 감행할 때에는 결연의 눈빛으로, 자식을 구하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때에는 처절함과 처연함 가득한 눈빛으로 표현해내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성경책을 품에 꼭 껴안은 채 드러낸 형형한 눈빛과 웃음기 머금은 표정은 소름을 안기기도 했다.

김용훈 감독은 “극 중 아스팔트에 얼굴을 대고 있는 장면도 있고, 스턴트 배우가 해야 할 만한 장면도 있었는데, 과감히 몸을 던지더라”며 “얼굴을 흙이나 피로 뒤덮는 분장을 한 상태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고마웠다”며 현장에서도 뜨거운 열정을 보인 고현정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고현정은 ‘모래시계’ ‘선덕여왕’ ‘대물’ ‘여왕의 교실’ ‘디어 마이 프렌즈’ 등 대표작은 적지 않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작품을 거의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스크걸’을 선택해 그 이유가 궁금했다.

“저는 고팠다. 제의를 받았을때 너무 기뻤다. 장르물에 저를 모르는 분들이 연락을 해오셨다. 나도 기회가 오는구나. 내가 그동안 사건들이 많아 ‘연기만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배역만으로 저를 생각하고 연락을 주신 점이 너무 좋았다.”

고현정은 “이야기와 캐릭터의 어떤 부분이 자신을 사로잡았나”는 구체적인 질문에는“한 사람을 3명이 연기한다는 기획, 거기서 내가 마지막이라는 부분이 좋았다. 나는 내가 맡은 모미 앞 부분을 모니터링 하지 않았다. 나는 내 것 모니터도 잘안하는 편이다.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부분, 즉 , 교도소에 10년간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숙지하고 들어갔다”고 밝혔다.

특히 한 배우가 아니라 여럿 명의 배우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고현정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 고현정은 “저 혼자 드라마를 짊어지고 가는 드라마. 잘 되면 본전이고 못되면 책임을 다 뒤집어쓰는 그런 드라마 보다는 구조적으로 협력하게 되어있는 드라마, 저를 빼고 두 사람이 더 있어, 책임감도 줄어들고, 눈에 띄지 않고 작품의 퍼즐로서 녹아드는 드라마에 고파있었던 것 같다”면서 “늦은 감이 있지만 시나리오를 보면서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되기 보다는 이런 기획과 작품이 잘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고현정은 또 이번 연기의 주안점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그는 “다들 모성애라고 물어보시는데. 모성애를 생각 많이 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하면 ‘마스크걸’에서만 볼 수 있는 모성을 표현해낼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30년 넘게 연기를 하다 보니 시청자들이 봐왔던 모습과 표정을 쓰지 않는 데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고현정이 아니라 모미로 보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며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마스크걸’에서의 열연 뒤에 숨은 노력을 밝혔다.

모성애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생각과 연기 포인트를 전했다. “모미는 모성보다는 현실을 직시하자가더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 같다. 모미가 딸인 미모를 만나는 장면에서도 굳이 모성을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 보시는 분들이 알 것이다. 표현을 하면 신파가 되고, 구태의연해질 것 같았다. 현실적으로 딸을 구해내고 지켜내는 게 급하지 않을까. 모성은 보시고, 느끼시고 싶은 분의 몫이다. 그래도 감독은 조금은 모성이 표현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내가 딸을 보고 살짝 웃는 장면은 그렇게 해서 나왔다.”

고현정은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아 복수에 나서는) 김경자(염혜란)도 잘못되고 비뚤어진 모성이다. 그런데 엄청 당당하다. 모미는 모성을 모른다. 모미를 관통하는 단어 하나를 든다면 ‘염치‘다. 딸과 모미가 만나니 할 말이 없고 싸울 수 밖에 없다. 모성으로 싸우는 게 아니고 성깔 때문에 싸운다”면서 “모성 강요는 피곤하다. 저도 엄마가 되려다 말아 모성을 잘 모른다. 모미에게 모성은 원초적인 것만 있다. 모성이 원석이라면 가공은 못한 채 툭 튀어나온 상태로 있는 것이다”고 부연설명을 이어갔다.

고현정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대사에 대해서는 “(감옥에서)나 여기 나가야겠어. 주님에게 용서를 빌었거든요. 구원받을 것이라고 하는 대사가 왠지 좋았다”면서 “구원 대사를 할 때는 시야가 완전히 열렸다. 구원 받으면 실제 어떤 생각이 들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걸까? 그것을 표정으로 나타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고현정은 인터뷰내내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사람들이 고현정을 왜 어려워할까”라는 질문에는 “저의 개인사 때문에 그렇죠. 이걸 연기로 눌러야 되는데 못 눌렀다”고 말했다. 왜 작품을 적게 하는지를 물어보자 “작품 미팅을 하면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때 화를 낸다. 혹시 작품이 잘못되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서 나오는 감정이다”면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잘 숙련되고, 잘 쓰일 수 있도록, 건강하게 나이 먹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고 밝혔다.

고현정은 ‘마스크걸’ 제작발표회에서 신인 이한별을 앞으로 내세워 훈훈함을 보여준 바 있다. “좋은 후배들이 많이 나오면 기분이 어떤가”라고 묻자 “위협적이다. 저의 취약점인 불안감을 건드린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든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까지는 가지 않는다. 내가 할 일은 세상에 있을 것이다. 모르고 넘어가면 못써먹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발탁될까를 생각한다”고 답했다.

고현정은 “배우로서 환상에 빠지고 싶지 않고, 도망가고 싶지도 않고, 시대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나에게 주로 들어오는 배역이 변호사, 검사 등이다. 그런 남편을 만나고 싶지, 그런 사람의 와이프 역은 안들어온다”고 했다.

고현정은 젊은 배우들과 협업하면서 많은 걸 느낀 듯 했다. “후배들이 당당하고 자연스럽다. 우리 때는 비굴하게 일부러 쫄아있었다. 요즘은 핸드폰도 사용하고, 긴장하지 않더라. 내가 그런 시대를 거쳐 여기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기하는 것 같지 않은 연기를 펼치는 후배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탈옥신 촬영이 힘들었다. 가파른 벽을 올라가는 장면인데, 와이어로 하니 내 몸이 벽에서 떨어졌다”면서 “그래도 뛰고 달리는 신을 하고싶다. 상체는 앞으로 나오는데, 다리는 안따라왔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고현정은 “사실은 그동안 단독주연 작품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은 25회 죽었고, ‘모래시계’ ‘대물’ ‘디어 마이 프렌드’도 단독주연이 아니었다면서 항상 앙상블을 원해왔다고 했다.

고현정은 “개인사가 부각될 때 서운했는가?”라는 질문에는 “저의 과실에 공범임을 인정한다. 이제는작품이 들어오길 간절히 원한다. 무념무상 상태로 연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답했다.

30년 톱스타로 살아가는 기분이 어떠했는지를 묻자, 더욱더 솔직한 답변으로 마무리했다.

“이혼하고 2005년 드라마 ‘봄날’을 통해 복귀했는데, 컴백 못할 것 같았다. 창피하고 부끄럽고, 다른 나라에 가서 살까 하고 생각하다가 돌아왔는데, 그때 잘왔다는 느낌이다. 친정 같은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하고싶은 대로 다 한 것 같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니더라. 그걸 몰랐다. 세상에 그런 곳은 없다. 후회가 됐다. 이제 진짜 배우로, 연기로, 일로 평가받고 싶다. 일로 세상을 만나고 싶고, 일을 하면서 세상을 겪고싶다. 그래서 연기가 소중하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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