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부산, 안규철 개인전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엔 ‘Kunst’(예술), 다른 하나엔 ‘Leben’(삶)이라고 쓰였다. 삶으로 향하는 문엔 손잡이가 하나도 없고, 예술로 향하는 문엔 손잡이가 다섯개나 달렸다. 어느것 하나 쉽지 않다. 한국 현대미술계의 중추적 작가 안규철의 1991년 작업이다. 작가는 “독일의 작은 대안공간에서 선보였던 첫 작품이다. 불가능한 모험과 도전, 예술의 길로 들어서야겠다는 생각을 담았던 작품”이라고 말한다.
안규철의 개인전이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린다. ‘사물의 뒷모습’(사진)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전시엔 작가의 대표작들을 선별했다. 부산에서의 첫 개인전이자 교직 생활을 마친 후 전업작가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그간 작가로 활동하면서 이정표이자 갈림길 역할을 했던 작품들을 모아봤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일반적인 사물과 언어로 세상의 모순을 드러낸 오브제 작품, 텍스트가 작품의 주요 요소로 활동하는 텍스트 작업, 2010년 이후 많이 시도했던 퍼포먼스와 영상작업들이 총 망라됐다. 201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회화 ‘그들이 떠난 곳에서-바다’는 재제작 돼 전시됐다. 당시 작가는 200개의 캔버스에 그린 바다 그림을 광주 시내 곳곳에 버리고, 전시기간동안 지역 신문에 ‘작품 분실 공고’를 내고 그림을 찾아달라고 요청한다. 글을 읽은 독자들 중 일부가 작품을 찾았고 20여개의 캔버스만이 돌아와, 전시장에 걸렸다. 작품의 다수는 잃어버렸지만 분명 어디엔가 존재한다. 작가는 “5.18민주화 항쟁 당시 우리곁을 떠난 수많은 이들도 이렇게 유령이 되어 떠돌고 있진 않나”라며 시대의 비극을 은유한다.
이른바 ‘개념미술’로 불리며 난해할 것 같은 안규철의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지점이 있다. 작품에 포함된 ‘글’ 때문이다. 일종의 가이드이지만 그렇다고 작가의 생각만을 강요하진 않는다. ‘단결해야 자유를 얻는다’는 명제를 짊어진 9벌의 외투는 서로 스크럼을 짜서 안과 밖을 나누는 벽으로 작용하고, 검은 구두솔에 적힌 ‘죄’라는 흰 글자는 글씨가 점점 늘어나는 흰색 솔 사이에서 사라져버린다. 작가는 “시각적인 만족이나 매혹을 기대하는 관객에겐 불편하고 낯설 수 있다. 다만 나는 미술이 이러한 감각적 가치만를 추구한다면 예술의 근본 가치를 놓칠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며 “사물의 배치와 구성으로 이야기를 끌어낸다. 시인들이 몇 개 단어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사유를 끌어내는 안규철 작업의 기반이 되는건 매일 쓰는 짧은 글이다. 글을 써서 생각을 모으고 그것을 작품으로 발전시킨다. “대학 졸업후 ‘계간미술’에서 7년간 기자로 활동하면서 생긴 습관 같은 것”이라는 작가는 지난 2014년부터 문예지 ‘현대문학’에 연재한 글과 그림 69편을 모아 책을 출간했다. 전시 제목과 같은 ‘사물의 뒷모습’이다. “진실은 사물의 표면보다 보이지 않는 이면에 숨어있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이어진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