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입는 옷마다 ‘맞춤’인 것처럼 ‘착붙’인 사람들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생전 처음 입어보는 옷인 것 마냥 어색해하면 보는 사람마저 불편하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담긴다면 금상첨화. 옷이 음악이라면, 이 분야에 정통한 달인이 있다. 워낙에 다양한 장르를 자기 것처럼 소화하는 음악인. ‘팬텀싱어3’(JTBC)를 통해 사랑받은 테너 존노다. 아, 물론 존노 역시 패션에도 일가견이 있다. 적어도 ‘호랑이 셔츠’를 그토록 완벽하게 소화하는 성악가는 본 적이 없다. ‘유느님’(‘놀면 뭐하니?’ 유재석)에 버금가는 패션 센스!
‘팬텀싱어3’에선 주로 ‘성악 천재’로 불렸다. 국악부터 EDM까지 완벽히 소화했고, 그안에 자신의 색깔을 담았다. 프로듀서로 함께 한 김문정 음악감독은 “가지고 있는 목소리에서 천재성을 봤다”고 말했을 정도다.
‘성악 초짜’ 기자가 ‘천재’ 성악 선생님을 만났다. 이른바 ‘존노의 성악교실’. 도전곡은 ‘더 프레이어’(The Prayer)였다. 안드레아 보첼리와 셀린 디온이 함께 부른 이 곡은 존노 강사가 ‘팬텀싱어3’ 예선 1라운드에서 선보인 노래다.
두 사람이 부른 듀엣곡을 한 사람이 소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성악가와 팝가수의 발성을 오가는 엄청난 수고로움이 따라온다. 존노 강사는 이 곡을 수업 주제로 정하며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성악 발성과 팝 발성을 오가는 것을 배워보자”고 했다. 그때만 해도 미처 몰랐다. 양쪽을 오가는 발성을 한 몸에서 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게다가 무반주로 이어진 ‘존노쌤’의 ‘더 프레이어’를 바로 옆에서 듣고 있자니, 아름다운 목소리에 급격히 위축됐다. 둘 중 하나만 해도 어려운데, 성악은 물론이거니와 팝은 커녕 가요도 부르지 않는 ‘음알못’(음악을 알지 못하는)에겐 두려움이 앞서는 시간이었다.
수업에선 두 가지가 강조됐다. 간단명료했다. “팝 발성은 있는 그대로의 목소리로, 성악 발성은 온 몸을 사용해 힘 있게 부를 것”.
존노 강사는 “팝 발성을 할 때는 자기가 가진 목소리로 자유롭게 가사를 잘 전달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사 한 줄 한 줄의 풀이를 더했다. ‘저는 기도합니다. 당신이 저의 눈이 되어주기를…’ 그러니 “경건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면 된다”고 했다. “음악은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경건함을 담아 불러봤더니 함박웃음이 터졌다. 완전히 쪼그라든 노래에 “조금 더 자신있게 불러도 된다”는 조언이 이어졌다. 표현의 자유로움도 강조됐다. “줬다 뺐다 하면서 밀당(밀고 당기기)하듯이 불러보라”는 원포인트 레슨이었다. 알기 쉬운 설명과 시범 덕분에 ‘음알못’도 단번에 알아들었지만, 막상 따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세상에나. 살면서 ‘밀당’이라는 것을 해본 적도 없는데, 노래에서 밀당이라니…. 하지만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에 금세 으쓱해질 만큼 제자의 기를 살려주는 선생님이었다.
성악 발성은 보다 전문가의 영역이다. “온몸을 쓴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호흡이 들어가고 까랑까랑하게 부른다”는 설명. ‘에!’, ‘에!’ 외마디 함성을 지르듯 “복부와 다리 등 온몸에 힘을 줘서” 안정감 있는 단단한 소리를 낸다. 선생님의 노하우에 힘 입어 1차 시도를 해보니, “자연스럽게 공간감이 생겼다”는 칭찬이 따라왔다. 하지만 의문도 이어졌다. 그렇다면 성악 발성을 할 때는 매번 이렇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보통 중노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존노 강사는 “오페라를 하다 보면 다양한 상황과 자세로 노래를 하기에 그럴 수는 없다”며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르면 익숙해진다”고 했다. 하나의 창법만을 고수하지 않고 다양한 발성을 오갈 수 있는 것은 ”성악을 늦게 시작한 편”인 데다, “팝과 다양한 음악을 즐겨들었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존노의 경우 목회자를 꿈꾸다 고3 시절 성악에 입문했다.
수업을 마치며 존노 쌤은 어설픈 학생에게 무려 A라는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개성이 중요한데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금 욕심을 내봤다. 내년쯤 오프라인 공연이 재개되면 존노 쌤의 무대에 ‘특별 게스트’로 서도 되겠냐고. 수업 내내 칭찬을 아끼지 않아 제자의 어깨를 한껏 올려놓던 존노 쌤은 금세 ‘단호박’으로 변신했다. 웃는 얼굴로 선을 그었다. “회사와 의논하라”고. 조금 마음이 쓰였는지, “저는 괜찮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소속사 관계자는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