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에 지급돼야 할 예산을 빼돌려 ‘상고법원’ 추진을 위한 비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관해 검찰과 대법원이 진위 공방을 벌이고 있다.

6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2015년 법원행정처가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자금 3억5000만원을 거둬 고위 법관들에게 나눠준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 중이다. 2015년은 대법원이 상고법원 입법 데드라인을 설정하고 대대적인 홍보를 벌였던 시기다. 검찰은 대법원이 억대의 일선 공보관실 예산을 현금화해 특정 인사들에게 격려금이나 대외활동비 명목으로 전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수사의 본류인 ‘재판거래 의혹’이나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해 압수수색 영장이 연이어 기각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법원의 ‘비자금 조성 의혹’은 혐의가 구체화될 경우 강제수사의 물꼬를 트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전날 대법원은 예산 대부분이 그대로 각급 법원에 다시 돌아갔다고 해명했다. 2015년 공보관실 운영비 3억 5000만 원 중 80%는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에 배정하고, 나머지 20%만 법원행정처가 사용했다는 내용이다. 법원행정처에서 사용한 20%의 예산도 행정처 차장과 각 실·국장에게 지급해 실질적으로 홍보나 공보 업무에 쓰였다고 한다. 이 설명대로라면 예산을 ‘불법 전용’하지는 않은 게 된다.

해명이 나오자 검찰은 곧바로 내용을 반박했다. 법원행정처가 2014년 해당 항목의 예산을 신설하는 단계에서부터 현금화해 각급 법원장들이나 행정처 간부들에게 ‘대외활동비’로 지급하기로 계획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기획재정부나 국회는 이 돈이 과실운영비로 사용될 것이라고 속아서 예산을 배정해 준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이러한 내용이 기재된 행정처 내부 문건과 관련자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의 돈은 각급 법원에서 현금화해 인편으로 법원행정처에 전달됐다. 이 금액은 2015년 3월 전남 여수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각 지역 법원장들에게 1인당 수천만 원씩 배분됐다. 각급법원에 배정된 예산을 현금화하고 거둬들인 뒤 다시 배분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친 셈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공보관실 운영비가 2015년에 처음 편성된 예산이어서 법원장들에게 편성경위와 집행절차 등을 직접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금의 규모와 이동경로에 대해 다툼이 없는 만큼 법원장들에게 배분된 예산의 용처를 파악하는 게 수사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2016년부터 이 예산을 현금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각급 법원에서 자체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올해부터는 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운영비를 현금이 아닌 카드로 썼고, 내년 대법원 예산안에는 공보관실 운영비를 편성하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수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각급법원에 내려준 현금을 행정처가 쓰지는 않았다”고 재차 설명했다.

좌영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