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변호인 선임 전망 속 기록 검토만 한 달 걸릴 듯 -2,3심도 방대한 기록 짐으로 작용… ‘전자화’ 의견도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모두 사임하면서 새로 선임되는 변호인은 10만페이지에 달하는 ‘기록 폭탄’을 맞게 됐다. 방대한 분량의 서류는 앞으로도 재판 속도를 결정할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김세윤)는 박 전 대통령에게 국선변호인을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변호사업계에선 국선변호인이 40여만 원의 수임료를 받고 사건을 맡기에는 너무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 본인이 전부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변호인은 복잡한 검찰의 공소사실을 일일이 반박해야 한다. 주 4회 재판이 열리는 만큼 이 사건을 맡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사건을 맡을 수도 없다.
변호인 입장에서 가장 큰 부담은 방대한 양의 사건기록을 검토하는 일이다.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대리인단은 기록을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심판 기일을 여유있게 잡아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검찰 수사기록 5만 페이지를 주요 심판자료로 삼았는데, 헌법재판관이나 소추위원 대리인단의 경우 개인별로 편차가 있지만 1회독 하는 데 2~3주 가량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형사사건은 변호인이 여럿이라도 기록을 나눠서 볼 수 없고 개별적으로 내용 전체를 파악해야 한다”며 “10만 페이지면 한 번 보는데 최소 한 달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10만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일일이 복사해서 가져오는 물리적인 작업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직원을 여러 명 붙여 고속 복사기를 사용하더라도 며칠이 걸리는데다, 복사 비용만도 최소 수백만 원 이상이 든다. 이 작업을 변호인 수만큼 반복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3심까지 갈 수 밖에 없다. 항소심과 상고심 재판부는 물론 변호인단이 교체된다면 새 변호인도 모두 동일한 기록 검토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법원 내부에선 재판 효율을 위해 박 전 대통령의 사건 기록을 전자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리적으로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페이지 검색기능이 지원되는 PDF파일을 활용하면 기록을 검토하는 시간은 크게 줄어든다.
현재 형사 분야에는 전자소송이 도입되지 않아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재판부 재량으로 종이기록과 별개로 전자화된 기록을 참고자료로 쓰는 것은 가능하다. 실제 한 항소심 재판부에서 1만 페이지에 달하는 사건기록을 PDF파일로 만들어 종이기록과 함께 대법원에 넘긴 전례도 있다. 한 법원장급 판사는 “1000만 원 정도의 예산을 들이면 박 전 대통령 사건의 종이기록을 전자화할 수 있다”며 “전자소송은 불가능하지만, 업무 편의를 위해 보조적으로 사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