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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음원 추천ㆍ사재기, 근본이 엉망인데 무슨 수로 막나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대중음악 취재를 맡은 기자는 음악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생산자의 가장 큰 고민은 힘들게 만든 음악을 어떻게 대중에게 알리느냐 입니다. 음악 시장이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이뤄지는 상황이다 보니 가장 큰 홍보 창구는 음원 사이트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 역시 대부분 음원 사이트를 통해 신곡을 접합니다.

음원 사이트는 오늘날 음악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특히 음원 사이트가 자체적으로 집계하는 차트는 음악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죠. 가수의 방송 섭외는 음원 차트를 기준으로 이뤄지고, 소비자는 차트 상위권에 오른 곡들을 중심으로 음악을 들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최근 ‘음원 사재기’ 논란이 불거져 실시간 음원 차트의 신뢰성이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음원 추천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상암동 디지털 매직 스페이스 12층 다목적홀에서 ‘디지털 음악산업 발전 세미나’가 열려 ‘음원 사재기’와 ‘음원 추천제’를 둘러싼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김민용 경희대 교수가 토론 발제자로 나서 ‘음원 추천제’와 ‘음원 사재기’의 폐해를 지적했습니다. 박진규 로엔 엔터테인먼트 대외협력실장, 밴드 시나위의 리더인 신대철 바른음원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헌 CJ E&M 음악사업부문 디지털뮤직사업부장, 이채영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한국지부 대리, 그리고 기자가 토론자로 참석해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3시간여에 걸쳐 긴 토론이 벌어졌지만, 안타깝게도 결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결론이 나올 수 없는 토론이었습니다. 지난 3년 전에도 ‘음원 추천제’를 둘러싸고 비슷한 토론이 벌어진 일이 있습니다. 당시 기자는 그 토론회에 참석해 현장을 취재한 바 있는데, 그때와 별 다를 것 없는 논의가 이번에도 되풀이 됐습니다. 이는 근본적인 문제가 전혀 해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상암동 디지털 매직 스페이스 12층 다목적홀에서 ‘디지털 음악산업 발전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제공]

▶ 첫 번째 문제, 저렴해도 너무 저렴한 음원 가격= 첫 번째 문제는 음원의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는 데에서 옵니다. 현재 국내 음악 시장의 대세는 스트리밍입니다. 국내에서 스트리밍으로 유통되는 음악의 한 곡당 가격은 7.2원으로 책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음원 사이트에서 월정액 상품으로 유통되는 경우 음원 단가는 3.6원으로 떨어지고, 다운로드와 복합된 월정액 상품에선 그 절반인 1.8원에 불과합니다. 가장 높은 7.2원을 기준으로 잡아도 1000번을 클릭해야 겨우 밥 한 끼를 사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렴한 음원 가격은 ‘음원 사재기’를 유발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바이럴 마케팅 업체가 음원 순위를 올리기 위해 여러 아이디로 동시에 스트리밍을 돌려도 큰 돈이 들어가지 않으니 말입니다. ‘음원 사재기’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이로 인해 부당한 이득을 보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스트리밍 매출액이 고정적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지난 2013년 종량제 도입 이후 스트리밍 횟수도 제작자들의 수익 정산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획사들도 음원 사재기에 들인 비용을 저작권료ㆍ실연권료ㆍ저작인접권료로 일부 보전할 수 있게 됐죠. 뿐만 아니라 저작권을 보유한 작사가와 작곡가들에게도 이득입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와 영세 기획사들에게 돌아가죠.

‘음원 사재기’를 둘러싼 도덕적인 비난에서 벗어나 큰 이득을 취하는 쪽은 사실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음원 사이트입니다. 음원 수익 중 유통사의 몫은 40%입니다. 한국에선 많은 플랫폼(음원 사이트)들이 음원의 제작ㆍ유통 사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수익은 저작권자 10%, 제작자 44%, 실연자 6% 비율로 배분됩니다. 음지에서 ‘음원 사재기’가 이뤄지거나 말거나 음원 사이트는 늘 이득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상암동 디지털 매직 스페이스 12층 다목적홀에서 ‘디지털 음악산업 발전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제공]

▶ 두 번째 문제, 음원 제작ㆍ유통 병행하는 플랫폼= 한 번 상상을 해보시죠. 대형서점이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베스트셀러 1위 책을 제쳐두고 그 출판사가 출간한 책을 자신의 매대에 추천 서적으로 올려놓는다…….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현재 각 음원 사이트의 ‘음원 추천제’를 비유하자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국내에는 플랫폼(음원 사이트)이 음원의 제작ㆍ유통 사업을 병행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요 음원 유통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 CJ E&M. KT뮤직 모두 현재 멜론, 엠넷닷컴, 지니뮤직 등 음원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죠. ‘음원 추천제’의 공정성 논란이 빚어지는 이유입니다.

김민용 교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8월 기준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멜론의 추천곡 중 로엔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유통되는 곡의 비율은 57%에 달했습니다. 지니뮤직의 추천곡 중 KT뮤직을 통해 유통되는 곡의 비율도 42%로 높았습니다. 이들 업체 모두 합리적인 기준을 통해 추천곡을 선정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추천곡 선정 기준을 투명하게 밝힌 일은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추천곡이 늘 실시간 차트 1위 곡보다 위에 놓인다는 점입니다. 김민용 교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음원 저소비층(1000원 미만 소비)의 70%, 중간소비층(1000~5000원 소비), 고소비층(5000원 이상 소비) 88%가 추천곡을 들어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앞서 지적한 저렴한 음원 가격이란 문제와 맞물립니다. 취향에 맞지 않는 곡이어도 저가여서 부담이 없으니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추천곡을 들어보게 된다는 겁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음원 차트 순위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사실상 ‘낙하산 인사’와 다름없습니다.

‘음원 추천제’를 포기할 수 없다면 적어도 추천곡을 차트에서 제외시켜 따로 소개해야 공정성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 음원 사이트 관계자들은 이 같은 의견에 대해 난색을 표했습니다. 3년 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입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상암동 디지털 매직 스페이스 12층 다목적홀에서 ‘디지털 음악산업 발전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제공]

▶ 음원 사이트들의 대승적 결단과 소비자 합의 필요= 최근 기자와 만난 한 기획사의 대표는 “음원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 유통사로는 어려워서 다음에는 더 큰 유통사로 바꿔보려고 한다”, 한 싱어송라이터는 “지금 (음원 사이트에서) 추천할 음원이 밀려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신곡 발표 일자를 늦춰보려고 한다”고 말을 한 바 있습니다. 이는 ‘음원 추천제’가 음악 생산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기자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음원 사재기’와 ‘음원 추천제’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3년 후 다시 똑같은 주제로 토론회가 열릴지도 모르죠.

현재로선 일부 시장지배적 사업자들이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음원 사이트들은 우선 ‘음원 추천제’를 폐지하거나 차트와는 별개로 운영해야 하고, 지나친 차트 순위 경쟁을 유도하는 실시간 차트ㆍ그래프ㆍ‘지붕킥’ 등을 자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점진적으로 음원 가격의 현실화도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스트리밍 1곡당 한국 돈으로 약 66원, 영국의 경우 약 125원을 지불해야 합니다. 스트리밍 단가가 100원 아니 50원만 돼도, 소비자가 심심풀이로 추천곡을 누르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테고, 바이럴 업체의 ‘음원 사재기’ 시도 역시 어려워질 테니 말입니다. 이는 결국 음악을 공짜라고 여기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인데, 과연 쉽게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 진 의문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입니다. 양질의 음악을 만드는 생산자 없인, K팝의 미래도 없습니다. 양질의 음악은 생산자에게 제대로 대가를 지급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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