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금융위기와는 다른형태 수년간 침체형 경제위기 초래 가능성 금리·지준율 인하불구 상하이 지수 하락 유럽·미국증시도 예상외 부진 아시아 국가 中 의존도 심화 큰 위험 브라질·인니 등 신흥국 치명타 “구명보트 없이 바다로 나아가는 격”
중국 증시와 위안화 폭락이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금융시장에 수 주에서 수 개월간의 짧은 기간 큰 충격을 줬다 회복되는 외환위기 또는 금융위기와 달리 수년 또는 그 이상 오랜 기간 실물경제의 침체를 가져오는 침체형 경제위기의 가능성이다.
25일가지 4거래일동안 22%나 하락했던 중국상하이종합지수는 지급준비율과 기준금리 인하가 동시에 이뤄진 뒤 열린 26일에도 고작 0.5%의 반등세로 출발했다. 정부 조치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25일 유럽증시의 반등폭이 24일 낙폭에 못미치고, 같은 날 미국 증시가 하락한 것은 중국 경제불안이 글로벌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미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의 비중은 개별 국가로는 미국 다음으로 크다.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며 자산 버블이 터졌을 당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는 전세계의 15%가량이었다.
또 1994년 데킬라 쇼크 때 멕시코의 전세계 GDP 비중은 2%였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맞은 5개국의 비중은 4%에 불과했다. 1998년 채무불이행(default) 당시 러시아의 GDP도 지구 전체의 고작 1% 수준이었다.
현재 글로벌 GDP에서 중국의 비중은 15%다. 1990년대초 일본과 비슷하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에서의 역할을 당시 일본을 능가한다.
독일과 일본 등 주요수출국의 핵심 시장이며, 호주와 브라질 등 자원부국들의 최대 고객이다. 미국도 S&P500 상장 기업의 절반가량이 중국에서 매출을 거두고 있다.
예일대학교의 스티븐 로치 선임연구원은 “1조 달러에 이르는 중국의 달러화 은행 대출 익스포저와 중국 경제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엄청난 의존도가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서면서 기업들의 달러 부채 상환부담이 커졌고, 중국의 수출이 약해지면서 중국에 의존하는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에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빚 문제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상케 한다. 정확한 통계가 없다. 다만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 5년간 80%포인트 증가한 300% 수준으로 불어났고, 철강 조선 화학 등 전통 산업들은 과잉설비로 성장세가 급속히 둔화되면서 부채상환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미국의 타임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디레버리징(차입축소)’이 진행됐지만, 채무는 사라지지 않았고 다만 중국으로 옮겨갔을 뿐”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대(對) 중국 무역규모가 큰 국가들도 치명타를 입게 됐다. 러시아, 브라질, 호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자원수출국은 무역수지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최대 교역 상대국인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유독 깊다.
위안화 절하와 관련 롬바르드스트리트리서치는 “아시아에서 베트남과 태국, 한국, 말레이시아가 가장 취약하며, 유럽에서는 헝가리와 폴란드가 위험하며 터키는 가장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중국 경제가 급락하면 무역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10개국 가운데 특히 한국의 충격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AP통신은 “중국이 세계경제에 공포라는 새로운 상품을 수출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번 중국발 위기의 강도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보다 훨씬 약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줄리언 제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유로존, 일본 등을 포함한 주요국의 경제지표는 대체로 양호하다”며 “중국의 부정적인 소식을 제외하면 글로벌 둔화 공포를 지지할 근거는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골드만삭스도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기존의 평가를 유지한다”면서 “중국의 약세가 글로벌 성장률이나 원자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과장하는 것을 경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잠재시장이자, 에너지소비국인 중국 경제가 휘청거리면 신흥국은 물론 선진국 경제에도 파장이 미칠 것이란 전망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이미선진국들은 ‘0%’ 금리 상황이어서 추가적인 통화팽창을 할 경우 자칫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HSBC의 스티븐 킹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지난 5월에 ”세계 경제는 위기 때 사용할 수 있는 어떤 구명보트도 없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홍길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