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경주)=정진영 기자] 이제는 한류라는 말이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가수들이 해외 무대에서 활동 중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K팝의 저변 확대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 아니다. 한국의 아이돌 음악은 여전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력 내에 있고, 발라드에선 아직까지 유재하를 넘어서는 문법이 등장하지 않았다. 한국 대중음악의 양 축인 발라드와 댄스 뮤직의 원류를 따라가다 보면 조용필 1집 LP의 A면 첫 곡 ‘창밖의 여자’와 B면 첫 곡 ‘단발머리’를 만나게 된다. 록을 이야기할 때에는 그 누구도 신중현이란 거목을 비껴나갈 수 없다. 이렇게 뿌리를 아는 것은 현재를 제대로 이해하는 시작인 셈이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의 전시물들을 바탕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의 각종 ‘최초’들을 돌아본다.
▶ 한민족 최초의 음원은 119년 전 미국서 녹음= 한민족 최초의 음원을 녹음한 주인공은 구한말 미국 유학생이었던 안정식, 이희철, 송영택이다.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하워드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1896년 7월24일 인류학자 앨리스 플레처(Alice Fletcher)와 함께 ‘달아 달아’ ‘매화타령’ ‘아리랑’ 등 11곡을 녹음했다. 이들은 미국 하워드대학교에 입학한 첫 한민족이기도 하다. 당시엔 아직 유성기 원반도 없던 시절이라 이들의 목소리는 6개의 실린더(에디슨 원통형 음반)에 담겼다. 미국 의회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이들의 목소리는 녹음 후 100여년이 훌쩍 지난 2007년 국내에 음반으로 발매돼 빛을 봤다.
▶ 최초 창작 가요는 이정숙의 ‘낙화유수’=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로 꼽히는 곡은 1926년에 발표된 윤심덕(1897~1926)의 ‘사의 찬미’이다. 그러나 이곡은 루마니아의 작곡가 요시프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h)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Donauwellen Walzer)’의 선율에 한국어 가사를 붙인 번안곡이다. 공식적인 결론은 아니지만 지난 1929년 음반으로 발매된 이정숙의 ‘낙화유수’를 한국인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로 보는 의견이 많다. 이 곡은 지난 1927년 단성사에서 개봉한 이구영 감독의 동명 무성영화의 주제가이기도 하다. 당시는 무성영화시대여서 이정숙은 영화 상영시간 동안 악단의 연주에 맞춰 극장의 꼭대기에서 노래를 부른 것으로 전해진다.
▶ 최초의 직업 가수는 채규엽= 채규엽(1906~1949)은 한국 최초의 직업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로 꼽힌다. 일본으로 유학해 동경의 중앙 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그는 한국 최초의 학사 가수이기도 하다. 채규엽은 지난 1930년 콜롬비아레코드를 통해 ‘유랑인의 노래’와 ‘봄노래를 부르자’로 데뷔했다. ‘유랑인의 노래’는 그가 직접 작사ㆍ작곡한 곡이다. 이후 그는 1932년 일본이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의 곡 ‘술은 눈물일까 한숨이랄까’를 우리말로 취입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1935년 월간지 ‘삼천리’가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그는 남자 가수 부문 1위를 차지한 바 있을 정도로 당대에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 최초의 걸그룹은 ‘저고리 시스터즈’= 국내 최초의 걸그룹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저고리 시스터즈’로 추정된다. ‘저고리 시스터즈’의 흔적은 1939년 일본 동경군인회관에서 열린 조선악극단 일본 공연 전단지에서 최초로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도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 유명한 가수 김정구와 함께 무대에 올랐던 이들의 일본 공연 사진과 잡지 기사 등에도 이들의 활동 당시 흔적이 남아 있다.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가수 이난영과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박향림 등 당대 최고 여성 가수들이 ‘저고리 시스터즈’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지난 2013년 ‘저고리 시스터즈’를 소재로 만든 창작 뮤지컬 ‘저고리 시스터즈’가 제작되기도 했다.
▶ 최초의 한류 스타는 걸그룹 김시스터즈= 최초의 한류 스타는 지난 1959년 미국으로 진출해 성공을 거둔 걸그룹 김시스터즈이다. 김시스터즈는 ‘저고리 시스터즈’로 활동했던 이난영과 김해송 작곡가의 두 딸(숙자ㆍ애자)과 이난영의 오빠인 이봉룡 작곡가의 딸(민자)로 구성됐다. 한국 걸그룹의 역사는 이렇게 유구하다. 다양한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노래와 함께 춤까지 선보였던 김시스터즈는 1959년 아시아 걸그룹 사상 최초로 미국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김시스터즈는 지난 1967년 미국에서 50만 달러를 세금으로 납부했을 정도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유명한 고액 납세자였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600달러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 최초의 창작 록 앨범은 애드포 ‘비속의 여인’= 애드포(Add4)는 ‘한국 록의 살아 있는 전설’ 신중현이 서정길(리드보컬), 한영현(베이스), 권순권(드럼) 등과 함께 지난 1962년 결성한 밴드이다. 애드포는 지난 1964년 12월 첫 앨범 ‘비속의 여인’을 내놓았다. 이 앨범에는 ‘커피 한 잔’ ‘비속의 여인’ 등 불후의 명곡이 다수 실려 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7월 키보이스가 한국 최초의 그룹사운드 앨범 ‘그녀 입술은 달콤해’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 앨범은 ‘정든 배는 떠난다’ 등 일부 곡들을 제외하면, 수록곡 대부분을 외국곡을 번안해 만들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애드포와 키보이스가 동시에 등장한 1964년은 한국 그룹사운드의 원년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