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한국 국적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복무를 하고 싶습니다.”

13년. 지난 2002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병역 기피 의혹으로 입국 금지를 당했을 당시 가수 유승준은 한국 땅을 밟지 못하는 세월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을 것이다. 19일 오후 10시 30분 유승준은 홍콩에서 생중계된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에 출연해 13년 만에 대중 앞에 심경을 밝혔다.

유승준 “한국에 돌아올 수만 있다면 다시 군대 가겠다”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은 유승준은 “무슨 말을 먼저 드려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어눌한 말솜씨로 진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아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다”며 “이 자리는 변명의 자리가 아니라 사죄의 자리가 될 것이다. 국민 여러분, 법무부장관, 병무청장, 출입국관리소장, 한국에 군목무 중인 젊은이들에게 물의를 일으키고 허탈하게 만들어 죄송하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유승준은 1997년 ‘가위’로 데뷔해 2000년대 초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였던 유승준은 2001년 허리디스크 수술로 4급 공익 판정을 받았지만 병역의무를 다하겠다고 밝혀 국민적인 호감을 샀다. 당시 그는 ‘아름다운 청년’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아름다운 청년’이 ‘배신자’로 낙인찍힌 것은 한순간이었다. 지난 2002년 유승준은 일본 공연을 위해 병무청에 보증인 각서를 제출한 뒤 특별 해외출국 허가를 받았으나, 공연 직후 미국에서 시민권을 획득했다. 입대 3개월을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병무청은 유승준이 고의적으로 병역의무를 회피했다고 판단해 입국금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지금까지 유승준은 출입국 관리법 제11조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해당돼 입국 금지 상태다.

유승준 “한국에 돌아올 수만 있다면 다시 군대 가겠다”

13년 만에 대중 앞에 선 이유에 대해 유승준은 “솔직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억울한 마음이 들어 자존심이 허락을 안했는데, 모든 것들이 내 잘못이란 걸 뒤늦게 깨우쳤다”고 답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중국에서 14편의 영화와 60여 편의 드라마를 찍었다”며 에둘러 부인하며 “현재 비자가 있거나 없거나 한국 땅을 밟을 수 없는 상황이고, 내 이름이 사상범이나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테러범과 동급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유승준은 당시 결코 병역을 회피할 목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았다고 수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유승준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2001년 미국 시민권 취득을 위한 인터뷰를 거절한 상황이었고, 일본 공연 역시 예정된 일정이었다”며 “9ㆍ11 테러 이후 시민권 인터뷰를 거절하면 시민권이 다시 나오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또 다시 인터뷰가 잡혔고 부모님의 설득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가족들도 모두 미국에 있었고 또 당시 앨범 2장을 37억 원에 계약한 상황이었다”며 “당시 소속사에 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연예인이 없어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많은 이들이 곤란해질 처지였다”고 덧붙였다.

유승준의 미국 시민권 취득은 국적법 개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05년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현 경남도지사)은 이중국적자가 한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상실하는 국적법 개정안(국적법 제9조)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유승준은 당시의 결정이 이토록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승준은 “2002년 입국 금지를 당한 뒤에도 오히려 쉬게 됐다는 생각에 기뻤을 정도로 일이 바빴다”며 “이후 내가 촬영했던 방송들이 잇따라 불방되자, 상황 판단이 되지 않은 나는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해 자존심이 상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너무 교만했고, 그런 상황을 감당할 만한 성숙함도 없었다”며 “다시 2002년으로 돌아간다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병역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자책했다.

유승준이 대중 앞에 다시 나설 용기를 갖게 된 계기는 두 아들 때문이었다. 유승준은 “아이들은 내가 인터넷상에서 유명한 사람으로 알고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나중에 더 크면 해줄 말이 없는 상황”이라며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고백했다.

마지막으로 유승준은 “지금도 자주 재판정 앞에 서 있는 꿈을 꾼다”며 “어떤 방법으로든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다. 뒤늦게 국민에게 사죄하게 죄송하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한편, 법무부는 지난 19일 “유승준에 대한 입국금지 해제나 국적회복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사실이 전혀 없다”며 “유승준에 대한 입국금지 해제나 국적회복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