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오, 나는 당신의 사랑이 필요해요(Oh, I need your love, babe).”(에잇 데이스 어 위크(Eight Days A Week) 중)’
“그리고 결국, 당신이 받게 될 사랑은 당신이 베푼 사랑과 같을 거예요(And in the end, the love you take is equal to the love you make).”(디 엔드(The End) 중)
처음 한국 땅을 밟은 ‘팝의 전설’이 무대에서 선보인 첫 곡의 첫 가사와 마지막 곡의 마지막 가사는 완벽한 수미상관의 미학이었다. 그 사이에 이어진 수많은 히트곡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절묘하게 엮여 거대하고도 극적인 이야기를 연출했다. 공연장에 모인 4만 5000여 관객들은 세월을 거스른 듯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전설을 바라보며 매 순간 전율했다. 여기에 봄날의 밤을 촉촉하게 적신 비는 대본에 없던 완벽한 애드리브였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 꼽히는 비틀스(The Beatles)의 주역이자 현존 최고의 팝스타인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벌였다.
이번 공연은 성사 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매카트니는 당초 지난해 5월 내한공연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공연을 취소한 바 있다. 칠순을 훌쩍 넘긴 매카트니의 고령을 감안하면, 이 공연은 사실상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내한공연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팬들의 아쉬움은 컸다. 따라서 매카트니의 내한공연이 다시 확정된 뒤에도 그의 건강을 우려하는 팬들이 많았다.
팬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매카트니는 단 한 곡도 음정을 내리는 일 없이 무려 3시간 가까이 앙코르 포함 37곡을 선보였다. 그는 군살 없는 몸매로 흰색 셔츠와 검은색 스키니 팬츠를 멋들어지게 소화했다. 그는 자신의 상징인 호프너(Hofner) 베이스를 비롯해 기타,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를 무대 곳곳에서 연주하며 역동적인 무대를 만들어나갔다. 매카트니와 10년 이상 호흡을 맞춰온 키보디스트 폴 위킨스(Paul ‘Wix’ Wichens), 베이시스트 브라이언 레이(Brian Ray), 기타리스트 러스티 앤더슨(Rusty Anderson), 드러머 에이브 라보리엘 주니어(AbeLaboriel Jr.)의 연주 역시 압권이었다. 그는 박제된 ‘전설’이 아니라 위대한 ‘현역’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돋보인 부분은 팬들을 배려한 선곡이었다. 매카트니의 반세기 음악인생 중 비틀스로 활동한 시절은 불과 10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매카트니는 지난 2013년에 발매한 솔로 앨범 ‘뉴(New)’의 수록곡인 ‘세이브 어스(Save Us)’ ‘퀴니 아이(Queenie Eye)’와 밴드 윙스(Wings) 시절의 히트곡 ‘리브 앤드 렛 다이(Live and Let Die)’ ‘어너더 데이(Another Day)’ 등 외엔 비틀스 시절의 곡으로 무대를 채웠다. 또한 그는 영어를 잘 모르는 팬들을 위해 자신의 멘트를 한국어로 실시간 해석하는 자막을 대형 액정화면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수시로 그는 “대박” “좋아요?” 등 다양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팬들과 소통하는데 힘썼다. 폭죽과 화염을 이용한 연출이 돋보였던 ‘리브 앤드 렛 다이’ 무대는 공연 후반에 빠져들 수 있는 지루함을 일순간에 날린 멋진 볼거리였다.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위한 추모 무대도 눈길을 끌었다. 매카트니는 세상을 떠난 전 부인 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를 위해 ‘메이비 아임 어메이즈드(Maybe I’m Amazed)’를, 비틀스로 함께 했던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을 위해 ‘히어 투데이(Here Today)’와 ‘섬싱(Something)’을 부르며 팬들과 함께 고인을 추억했다.
이젠 내한공연을 벌이는 팝스타들이 대놓고 기대하는 한국 관객 특유의 문화 ‘떼창’도 어김없이 터져 나왔다. ‘오블라디 오블라다(Obla Di Obla Da)’로 시동이 걸린 ‘떼창’은 ‘렛 잇 비(Let It Be)’를 거쳐 ‘헤이 주드(Hey Jude)’ 무대에서 절정에 달했다. 관객들인 마치 사전에 계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휴대폰 라이트를 켜 무대를 향해 비췄다. ‘헤이 주드’를 마지막으로 매카트니가 무대를 비운 뒤에도 관객들은 객석을 떠나지 않고 이 곡의 후렴구를 일제히 따라 부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에 다시 무대로 등장한 매카트니는 즉석에서 관객들의 ‘떼창’에 맞춰 ‘헤이 주드’를 다시 연주하며 화답했다. 놀란 표정으로 객석을 바라보던 매카트니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몸으로 감격을 표현했다. 이날 공연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공연을 마친 매카트니는 3일 자신의 트위터에 “환상적인 절정이었다. 한국팬들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가장 열렬한 환영을 해줬다(Fantastic climax to the Asian leg. Korean fans gave us the best welcome ever. We love them!)”는 글을 올리며 감격을 표했다. 내한공연을 한 번도 벌이지 않은 팝스타는 있어도, 한 번만 벌인 팝스타는 드물다. 참고로 매카트니는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무대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