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한 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음악이다. 록 특유의 강렬함을 표출하던 연주가 슬그머니 복잡 미묘한 재즈의 문법으로 변주된다. 복고적인 질감으로 다가왔던 사운드는 수시로 도회적인 매력으로 유혹한다. 직선적으로 느껴졌던 소리의 공간은 어느새 손에 닿지 않는 몽환으로 채워진다. 밴드 얼스바운드(Earthbound)의 첫 정규 앨범 ‘행오버(Hangover)’에 담긴 음악은 그런 음악이다. 지난달 21일 얼스바운드의 멤버 김각성(기타ㆍ보컬), 김영(베이스), 박성국(드럼)을 서울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얼스바운드 “어제와 오늘이 같은 연주는 의미 없다”

김각성은 “처음부터 방향을 정하고 만든 음악은 아니고, 멤버 셋이 어우러지자 자연스럽게 이런 결과물이 완성됐다”며 “앞으로도 우리의 음악은 계속 변화할 것이고, 앨범에 담긴 곡들도 새로운 형태로 진화를 거듭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국은 “멤버들 모두 추구하는 음악은 다르지만 그 방향은 큰 틀에서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며 “앞으로 우리가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우리도 궁금하지만, 지금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얼스바운드 “어제와 오늘이 같은 연주는 의미 없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서서히 끝나는 노래’를 비롯해 ‘숙취’ ‘촌스런 게 먹힐 것’ ‘씁쓸한 여자랑’ ‘마이너 클럽(Minor Club)’ ‘하이 데어(Hi There)’ ‘해몽’ 등 9곡이 담겨 있다. 얼스바운드의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즉흥연주를 중시하는 재즈의 감성이다. 얼스바운드는 드럼을 비롯해 앨범 녹음 거의 대부분의 과정을 원테이크(한 번에 끊임없이 녹음하는 방식)로 진행했다. 멤버들은 모두 서울 재즈 아카데미에서 인연을 맺었다. 이는 얼스바운드의 음악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이다. 박성국은 “오랫동안 재즈를 연주해왔고 연주에 있어서 재즈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부분이 많지만, 얼스바운드의 음악은 어디까지나 록”이라며 “앞으로 밴드가 들려줄 라이브의 참고 자료라는 생각으로 앨범을 녹음했기 때문에, 연주에 마음이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덜어내지 않는 등 자연스러운 흐름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김각성은 “고집이 세 외부의 의견을 잘 수용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리듬파트를 맡은 다른 멤버들이 내가 작곡한 곡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소화해주는 모습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며 “오랫동안 밴드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과정을 거치며 만족스럽지 못해 방황해왔는데 지금의 멤버들을 만나 방황을 멈추고 바로 앨범을 녹음할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얼스바운드 “어제와 오늘이 같은 연주는 의미 없다”

거칠면서도 블루지한 기타 연주는 다채로운 리듬 연주와 충돌과 어울림을 반복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앨범은 연주 앨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기 드물게 연주의 탁월함이 귀를 즐겁게 자극한다. ‘마이너 클럽’은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 리듬 파트 연주의 매력을 잘 이끌어낸 곡이다. 방송을 위해 다소 길이를 줄인 곡을 앨범에 함께 실은 타이틀곡 ‘서서히 끝나는 노래’는 마치 다른 곡인 것처럼 서로 다른 스타일의 연주를 들려주며 듣는 재미를 선사한다. ‘서서히 끝나는 노래’와 ‘하이 데어’의 팝적인 감각을 잃지 않는 멜로디는 연주에만 매몰되지 않는 밴드의 유연한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기타리스트 김종진은 이 앨범에 대해 “첫 곡부터 압도적”이라며 “정서적인 합과 몽환적인 비행이 놀라울 정도로 독특하고 매력적인 밴드의 등장”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김각성은 “화성이나 연주 등 음악적인 부분을 떠나 이번 앨범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느낌은 ‘숙취’였다”며 “많은 이들이 술에 취해 벌인 행동과 내뱉은 말 때문에 다음 날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멤버들 모두 오랫동안 연주 활동을 벌여왔지만 손에 남은 결과물이 없었기 때문에, 밴드의 지속적인 활동을 위한 동기부여 차원에서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며 “싱글이나 미니앨범 대신 다소 부피가 큰 정규앨범을 내놓은 이유도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던 얼스바운드는 지난달 25일 서울 서교동 벨로주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열고 본격적인 이름 알리기에 나섰다. 박성국은 “처음 생각대로 앨범의 녹음과 믹싱이 이뤄지지 않아 아쉬웠던 부분들은 공연장에서 새로운 시도를 담은 라이브로 채워나갈 것”이라며 “5월에도 재미있는 공연 일정이 많이 잡혔으니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