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서상범 기자]“그냥 집에 가는 길에 와봤어요. 1년 동안 퇴근길에 수없이 무심코 지나던 길인데, 오늘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향하더라구요“ 2015년 4월 16일. 세상에서 가장 슬픈 꽃들이 광화문 광장을 하얗게 수놓았습니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희생자 분향소에는 하루 내내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전 늦게부터 돌풍과 함께 내리던 비에도 불구하고 분향소를 찾던 시민들의 행렬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며 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기자도 퇴근길에 오후 6시께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취재를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하루 내내 먹먹함을 움켜지고 버티던 가슴이 발길을 광화문으로 향하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호선 광화문역을 나서자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굳은 표정으로 발길을 재촉했고, 저도 함께 그들과 발을 맞췄습니다. 광장으로 나서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1년여 동안 지켰던 자리로 향했습니다. 시민들은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채 분향소에 조문을 하기 위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저도 모르게 그 줄의 끝을 찾았습니다. 줄은 광장 입구를 따라 세종대왕 동상에서 한 번 꺾였고, 다시 그 줄은 광장 지하에서 두 번 꺾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런 말 없이 줄의 끝에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오전부터 내린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고 무거운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을 정말 다양했습니다. 단체로 교복을 입고 온 중,고등학생부터 앳띈 얼굴의 대학생, 중장년부터 부모님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까지. 더욱 눈에 띈 것은 근처의 회사에서 퇴근길에 들린 것으로 보이는 회사원들의 행렬이었습니다. 혼자서 온 사람부터, 동료들과 함께 온 사람까지. 사원증을 미처 벗지 못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 중 한 분께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는 한 남성분은 ”종각역 근처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시민“이라고 자신을 어렴풋하게 소개했습니다. 그는 ”딱히 오늘 분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왠지 하루종일 무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이 쪽으로 발길이 향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런 말 없이 두 손을 꽉잡고 줄을 서고 있는 연인들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수천명의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을 길게 수 놓으며 침묵속에서 자신의 차레를 기다렸습니다. 한시간 정도 기다려서야 분향소에 섰습니다. 주최측에서 건네주는 하얀 국화 꽃을 희생자들의 영정에 놓을 때는 저도 모르게 눈이 뜨거워졌습니다. 딱히 울고 싶은 생각은 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눈 주위가 파르르 떨려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분향을 마치고 돌아서는 분들의 눈주위도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그제서야 손 끝이 시려웠습니다. 4월의 중순에서 손이 시렵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게 광장의 바람은 매서운 칼처럼 불었던 것 같습니다. 이날 오후 8시 기준으로 주최측 추산 4만여명의 시민들이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한편 광장을 침묵만이 지켰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광장의 바깥에서는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정부 시행령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던 대학생들도 있었습니다. 15개 대학 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와 대학생단체들로 구성된 ‘세월호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소속 10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은 청계광장에서 추모집회를 열었습니다. 학생들은 저마다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손 편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참여연대는 이날 오전 8시 30분 세월호 인양 촉구를 위한 행진을 했고, 서울민권연대도 오후 4시16분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보신각ㆍ서울광장을 거쳐 광화문광장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습니다. 오늘 오전 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총리가 각각 진도와 안산을 찾았다가 유족들의 항의를 받고 분향도 못한채 발길을 돌렸는데요. 이름없이 광장을 찾은 시민들의 위로로 295명의 사망자와 9명의 실종자들, 그리고 그 이상의 가족들에게 조금의 위안이나마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