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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한 리메이크를 흔치 않게 만드는 깊은 목소리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과거의 곡을 다시 불러서 싣는 리메이크 앨범은 대개 노골적인 상업적 전략의 산물이다. 이미 대중에게 검증된 곡을 다시 부르는 일이 신곡 홍보보다 주목을 받기에도 수월하고 실패 가능성도 적기 때문이다. 음반시장 불황의 지속으로 리메이크 앨범 발매가 늘어났지만, 고(故)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 앨범처럼 예술성까지 확보한 리메이크 앨범은 희귀종이 됐다.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의 리메이크 앨범인 정규 3집 ‘비욘드 더 블루스’는 그 몇 안 되는 희귀종 중 하나이다.

지난 23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강허달림은 “독특한 목소리 때문인지 몰라도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내 목소리로 다른 가수들의 곡을 들어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며 “리메이크 앨범은 일종의 의무감으로부터 나온 결과물”이라고 앨범 발매 소감을 밝혔다.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이 리메이크 앨범 ‘비욘드 더 블루스(Beyond The Blues)’를 발표했다. [사진제공=런뮤직]

흔한 리메이크 앨범을 흔치 않게 만드는 일등공신은 강허달림의 깊고 끈적끈적한 목소리이다. 강허달림의 이름 앞에는 ‘블루스 디바’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블루스는 과거 미국 남부의 농장지대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들의 노동요에서 기원한 음악이다. 흑인 노예들의 피와 땀을 먹으며 탄생한 음악인만큼 블루스 보컬리스트들의 목소리에선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사실 강허달림의 전작인 1집 ‘기다림, 설레임’(2008)과 2집 ‘넌 나의 바다’(2011)에는 블루스라고 부를만한 곡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블루스 디바’로 통하는 이유는 절절하고도 깊은 목소리 때문이다.

강허달림은 “스스로를 ‘블루스 디바’라고 소개한 일도 없고 장르에 관계없이 노래를 부르는데, 내가 ‘블루스 디바’로 회자돼 놀라웠다”며 “그런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이젠 내 목소리의 색깔이 블루스와 닿아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나를 ‘블루스 디바’로 부르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이번 앨범은 다른 리메이크 앨범과 비교해 선곡부터 남다르다. 이정선의 ‘외로운 사람들’, 신촌블루스의 ‘골목길’,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처럼 유명한 곡도 있지만 송창식의 ‘이슬비’와 ‘밤눈’, 윤명훈의 ‘어떤 하루’, 숙자매의 ‘열아홉 살이에요’, 고(故) 채수영의 ‘이젠 한마디 해 볼까’ 등 대부분의 수록곡들이 대중에게 낯선 편이다. 특히 ‘기슭으로 가는 배’는 다소 난해한 포크 음악으로 유명한 김두수의 곡을 처음으로 리메이크한 사례여서 눈에 띈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 중 블루스로 꼽을 수 있는 곡은 ‘외로운 사람들’ ‘이젠 한마디 해 볼까’ ‘어떤 하루’ 정도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허달림의 강렬한 목소리는 모든 곡들이 새로운 곡으로 들리고 또 블루스로 들리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강허달림은 “이번 앨범을 통해 블루스라는 장르를 넘어 내 목소리의 색깔 그 자체를 보여주고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며 “‘비욘드 더 블루스’라는 앨범 타이틀은 블루스라는 장르가 아닌 나 자신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가장 어려운 작업은 원곡자들의 사용 허락을 받는 일이었다”며 “원곡자들을 하나하나 수차례에 걸쳐 찾아다니며 곡을 부르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는데, 다행스럽게도 대부분 재능기부에 가까운 수준으로 리메이크를 허락해줘 앨범을 무사히 제작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이 리메이크 앨범 ‘비욘드 더 블루스(Beyond The Blues)’를 발표했다. [사진제공=런뮤직]

전작을 직접 프로듀싱했던 강허달림은 이번 앨범의 프로듀싱을 정상급 베이시스트인 서영도 한양대 교수에게 맡겼다. 서영도는 편곡까지 도맡으며 앨범 제작 전반을 지휘했다. 여기에 블루스 기타리스트 찰리 정과 피아니스트 민경인 등 정상급 연주자들이 참여해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힘을 보탰다. 또한 강허달림은 녹음을 원테이크(한 번에 끊임없이 녹음하는 방식)로 진행해 곡의 자연스러움을 극대화했다. 전작과 비교해 여유로운 느낌을 주는 목소리도 눈에 띄는 변화이다.

강허달림은 “제작의 모든 것을 홀로 감당했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에는 많은 부분을 동료들에게 맡겼다”며 “연주자들에게도 낯선 선곡이어서 모두들 신선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예전에는 집요하게 끝을 보기위해 쫓아다니는 느낌으로 앨범을 만들었는데, 바닥까지 파고 들어가보니 스스로에게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예전에는 무대 위에서 음정이 살짝 흔들리는 것조차도 견디지 못했는데, 결혼해 가족이 생기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고, 그런 마음이 노래에도 묻어나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한편, 강허달림은 오는 27일 오후 8시, 28일 오후 3시와 7시 서울 합정동 LIG아트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개최한다. 관객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호흡할 수 있는 소극장 콘서트이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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