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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작 4명이 3주간 찍어온 '고퀄리티' 여행다큐, '세계테마기행'의 힘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고학력의 4060 세대, 소위 ‘전국의 교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꼽혀온 EBS ‘세계테마기행’은 매회 이슈를 생산하는 방송은 아니다. 하지만 2008년 첫 방송 이후 지난 7년간 꾸준한 사랑받아온 ‘소리없는 강자’다. 올 한 해 유난히 성적이 좋다. 지난 3월 6일 방송된 ‘윈난 소수민족기행 4부 - 윈난의 원시부족, 와족’ 편이 프로그램 최초로 4%의 시청률을 넘긴 이후, EBS 프로그램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프로그램 16위(한국갤럽ㆍ10월 기준)에도 올라있다.

최근 EBS 본사에서 만난 ‘세계테마기행’의 김현주ㆍ류재호 CP(책임프로듀서)는 프로그램의 저력을 한결같이 고수해온 기획의도에서 찾았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여행을 통해 지식과 의미를 가져가자는 생각”으로 기획해 “보다 깊이있게 들어가 현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면서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것이 ‘세계테마기행’의 시작이었다. 그 안엔 한 권의 책을 읽는 듯한 스토리텔링과 빼어난 영상미,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진정성 있는 가치가 담겼다. 


사실 프로그램의 제작환경은 넉넉하지 못하다. 4개의 외주제작사가 6개월치의 기획안을 각각 제출하면 김현주 류재호 CP와의 회의를 통해 지역과 주제를 선정하고, 자료조사를 통해 제작에 돌입한다. 현지로 향하는 인원은 고작 4명. 제작PD와 카메라, 조연출, 큐레이터(출연자)가 전부다. 총 3주간 현지에서의 생활까지 더한 제작비는 불과 60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현지로 향하면 밤샘 이동은 물론이고 끼니를 거를 때도 많다. 혹여 백야 지역에선 이른바 ‘출장 불문율’(해 떠있을 땐 일하고, 해가 졌을 땐 쉰다)이 깨져 밤낮 없이 촬영만 한다. 그 이유는 오직 ‘깊이있는 여행’을 담기 위한 제작진의 고집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큐레이터의 존재는 상당히 중요하다. 아름다운 풍광만 담아오는 것이 아니라, 잘 짜인 구성으로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보여주는 ‘세계테마기행’에서 큐레이터는 이야기 전달자의 역할을 한다. 시청자에겐 간접체험의 시작이며, 일대일 교감의 출발점이다.

소설가 김영하를 시작으로 박재동 화백, 가수 이상은 등 유명인사들이 큐레이터로 출연했던 ‘세계테마기행’은 지난 몇 년 사이 큐레이터 선정 방식이 다소 달라졌다. “현지언어 구사 능력을 최우선”(류재호 CP)으로 보되 “현지의 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열려있는 사람”(김현주 CP)을 찾는다. 류재호 CP는 “최근 교수들의 출연 빈도가 높은 이유는 언어와 더불어 문화, 역사 등 인문학적 이해도가 높은 분들을 찾다 보니 교수 큐레이터가 많이 등장한다”고 했다. ‘교수진’의 출연이 잦다고 무겁고 딱딱하지만은 않다. 특히 중국 편에 자주 얼굴을 비친 한국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학과 김성곤 교수는 ‘세계테마기행’의 대표 큐레이터로, 류 CP는 “김성곤 교수는 해박한 지식과 수려한 말솜씨로 연예인 수준의 이야기를 한다”며 “거의 원맨쇼 수준이다. 사막에 올라 대금을 부는 장면은 압권이었다”며 극찬했다.그러면서도 한 겨울의 캐나다 여행이나 몽골의 빙하 여행과 같은 체험형 테마를 소화할 “체력이 밑바탕이 되는 젊은 큐레이터”도 선정기준의 하나다. 


내레이션까지 겸하는 큐레이터로 인해 시청자들은 여행자의 감정을 공유하면서도, 프로그램의 마지막엔 현지인의 감정으로 여행을 마치는 경험을 한다. 김현주 CP는 “내가 이 사람이 돼 여행하는 느낌을 주자는 것이 ‘세계테마기행’의 구성방식”이라며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큐레이터도 처음 낯선 나라에 갔을 땐 익숙치 않아 여행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던 것들이 3주간의 여행을 마치게 되면 그 문화에 젖어들어 현지인의 관점으로 빠져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같은 지역이라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독특한 주제(‘이탈리아 문명 기행 시리즈’, ‘중국 한시기행’ 등)를 가져가기에 시청자에겐 견문을 넓히며 새로운 지역을 탐색하는 ‘발견의 기쁨’도 따라온다. 뿐아니라 2012년 기행 프로그램 최초로 사용한 헬리캠을 비롯해 액션 카메라 등 다양한 영상장비의 활용으로 생동감 있는 영상이 보는 내내 쏟아진다. 굽이굽이 흐르는 폭포수부터 네팔의 시바신전까지 구석구석 담아내고, 큐레이터가 직접 액션 카메라를 착용하고 촬영에 임해 시청자가 직접 체험하는 듯란 느낌도 전한다. 이는 곧 ‘세계테마기행’의 특장점이기도 하다. “촬영기술이 달라지니 같은 지역을 담더라도 시청자에겐 전혀 다른 지역을 만나는 듯한”(김현주 CP) 신세계를 열어주고 “탁월한 영상을 진일보한 TV 기술이 소화하니 기행 프로그램의 매력이 극대화됐다”(류재호 CP)는 분석이다. 류 CP는 다만 “헬리캠은 GPS 신호를 받다보니 신호가 끊기면 자주 추락한다. 전 세계 곳곳에 ‘세계테마기행’의 헬리캠들이 타임캡슐처럼 묻혀있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타방송사 PD들은 “‘세계테마기행’의 영상이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너무 올려놨다”는 볼멘소리를 내놓기도 한다.

이미 지난 7년간 시청자들에게 낯섦의 즐거움과 떠나고 싶은 갈망, 혹은 충실한 여행정보를 제공했던 ‘세계테마기행’은 향후 10년을 바라보며 느리지만 묵묵히 한 길을 걷고 있다.

“사람들에겐 진짜 여행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기존의 여행이 관광지에 들려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였다면 ‘세계테마기행’은 오프로드에요.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찾아 한 번 더 들어가보는 도전인거죠. 그 안에서 시각적인 즐거움과 지적인 욕망, 갈증을 충족하게 돕는 거죠. 그리고 결국엔 사람이 보여요. 낯선 곳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마음의 벽을 허물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돼요.‘세계테마기행’이 저 먼 나라에 있는 사람과 우리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국경의 벽을 마음의 벽이라 여겼던 것들을 조금씩 깨나가는 시도를 하고 싶어요.”(김현주, 류재호 CP)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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