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올 한 해 전 세계 대중음악계에 기록될 최고의 사건이 벌어졌다. 영국 출신 전설적인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지난 11일 20년 만에 신보인 ‘디 엔드리스 리버(The Endless River)’를 발표한 것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지난 반세기 동안의 여정을 수식하기에 전설이라는 표현은 다소 가벼워 보인다. 이들이 음악으로 쌓아올린 세계는 우주였다. 핑크 플로이드는 1967년 데뷔 앨범 ‘더 파이퍼스 앳 더 게이츠 오브 돈(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부터 1971년 앨범 ‘메들(Meddle)’까지의 시절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광활하고도 몽환적인 소리의 풍경으로 전 세계 음악 팬들을 매료시켰다. 빌보드 역사상 최장 기간 앨범 차트에 머문 1973년 작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과 1975년 작 ‘위시 유 워 히어(Wish You Were Here)’의 광활함에 질서를 부여한 사운드는 핑크 플로이드를 일찌감치 거장의 반열에 올렸다. 거장 알란 파커 감독이 영화로 제작해 더욱 유명해진 1979년 작 ‘더 월(The Wall)’은 음악의 사회적인 가치와 서사의 위대함을 보여준 걸작이었다. 화려한 조명과 영상, 정교한 음향 시스템을 적극 도입한 이들의 공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종합예술이었다. 이후 핑크 플로이드의 행보는 파행을 거듭했다. 강렬한 사회 비판과 함께 세상의 벽을 무너뜨리라고 외쳤던 앨범 ‘더 월’은 역설적으로 리더이자 베이시스트였던 로저 워터스(Roger Waters)의 독선을 드러냈고 이전부터 불거진 멤버들 간 불화의 벽을 공고히 했다. 이는 로저스의 밴드 탈퇴, 키보디스트 릭 라이트(Rick Wright)의 탈퇴와 복귀로 이어졌다. 로저스 없이 만들어진 1987년 작 ‘어 모먼터리 랩스 오브 리즌(A Momentary Lapse of Reason)’과 1994년 작이자 최근작인 ‘더 디비전 벨(The Division Bell)’은 여전히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올 한 해 남은 기간 동안 핑크 플로이드 신보 발매에 필적할만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이 전설적인 노장은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http://www.amazon.com)에서 역대 음반 중 사전 예약 판매량 1위였던 영국 아이돌 밴드 원디렉션(One Direction)의 ‘미드나이트 메모리스(Midnight Memories)’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만큼 핑크 플로이드의 무게감은 가늠하기 어려운 경지에 놓여있다. 이번 앨범의 제목 ‘디 엔드리스 리버’는 ‘더 디비전 벨’ 앨범의 마지막 곡 ‘하이 홉스(High Hopes)’의 마지막 가사 중 일부이다. 이번 앨범은 ‘더 디비전 벨’ 제작 당시 녹음했지만 발표되지 않은 곡에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와 드러머 닉 메이슨(Nick Mason)의 새로운 편곡과 녹음이 더해진 것이다. 21세기에 새롭게 돌아온 핑크 플로이드는 지난 2008년 라이트의 별세로 단출해졌지만, 라이트의 생전 녹음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작은 위안을 준다. 이번 앨범에는 ‘싱스 레프트 언세드(Things Left Unsaid…)’, ‘잇츠 왓 위 두(It’s What We Do)’, ‘에브 앤드 플로(Ebb and Flow)’, ‘섬(Sum)’, ‘스킨스(Skins)’, ‘언성(Unsung)’, ‘더 로스트 아트 오브 컨버세이션(The Lost Art of Conversation)’, ‘온 누들 스트리트(On Noodle Street)’, ‘나이트 라이트(Night Light)’, ‘라우더 댄 워즈(Louder than Words)’ 등의 총 18곡이 4개의 테마로 나뉘어 실려 있다. 이번 앨범을 요약하자면 21세기 첨단 녹음으로 따뜻하게 재현한 핑크 플로이드 초중기 사운드다. 4개의 테마로 나뉜 앨범 구성은 멤버 4명이 각각 LP 반 면(12분) 씩을 채워 독립적으로 곡을 만든 1969년 작 ‘움마굼마(Ummagumma)’를 연상케 한다. ‘잇츠 왓 위 두’는 중기작 ‘샤인 온 유 크레이지 다이아몬드(Shine On You Crazy Diamond)’의 테마를, ‘스킨스’의 혼란스러운 드럼 연주는 초기작 ‘어 소서풀 오브 시크릿츠(A Saucerful of Secrets)’의 중반부 연주를 떠올리게 만든다. ‘더 디비전 벨’에 영국의 우주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로부터 영감을 받은 곡 ‘킵 토킹(Keep Talking)’을 실었던 핑크 플로이드는 이번 앨범에 호킹의 내레이션을 담은 곡 ‘토킹 호킹(Talkin‘ Hawkin’)’을 실어 눈길을 끈다. 평단은 이번 앨범에 대해 전반적으로 평작 이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국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는 “‘더 월(Thw Wall)’ 이전의 핑크 플로이드의 향수를 느끼게 만든다”며 별점 4점(5점 만점)을 줬다. 미국의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은 “이번 앨범은 기대하지 않았던 환영의 묘비명”이라는 평가와 함께 별점 3.5점(5점 만점),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의 일요판인 옵저버(The Observer)는 “하루 일과를 끝내는 좋은 선택”이라는 호평과 함께 별점 4점(5점 만점)을 줬다. 길모어는 “‘더 디비전 벨’ 앨범 녹음 당시 3명의 멤버가 함께 연주한 녹음분 20시간 이상을 들어보고 새 앨범에 수록하기 위해 신중한 선택 작업을 거쳤다”며 “지난 한 해 동안 곡에 다시 새로운 파트를 추가하고, 남은 부분들을 새롭게 녹음해 현대의 스튜디오 기술을 살려 ‘21세기 형 핑크 플로이드 앨범’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메이슨은 “이번 앨범은 라이트를 향한 헌정 앨범”이라며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의 중심에 서 있던 그의 역할과 연주를 많이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5년 영국 런던에서 ‘라이브8’ 콘서트를 함께 성공적으로 진행했던 워터스의 부재는 여전히 아쉽다. 워터스는 지난 달 “나는 1985년 핑크 플로이드를 떠났다”며 “‘디 엔드리스 리버’ 앨범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어 팬들의 아쉬움을 더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기존 행보와 멤버들의 고령에 비춰 볼 때 이번 앨범은 밴드의 마지막 작품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길모어의 아내이자 작가 폴리 샘슨은 지난 7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번 앨범은 라이트의 ‘스완 송(마지막 작품을 일컫는 말)’”이라는 표현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마지막을 암시한 바 있다. 새롭게 다듬은 오래된 사운드를 들고 돌아와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선 노장의 모습이 마치 생성과 소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아 황혼처럼 장엄하다. 유일한 보컬곡이자 마지막 곡인 ‘라우더 댄 워즈’의 가사 “우리의 심장소리는 말보다 더 크다(The beat of our hearts Is louder than words)”가 아련하다. 전설이여, 영원히 흐르는 강을 타고 안녕히. 123@heraldcorp.com

사진 설명 : 영국 출신 전설적인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지난 11일 20년 만에 새 앨범 ‘디 엔드리스 리버(The Endless River)’를 발표했다. 왼쪽부터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 드러머 닉 메이슨(Nick Mason). [사진제공=소니뮤직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