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시리아와 이라크를 빠르게 잠식하며 중동 정세를 뒤흔들고 있는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 나선 미국과 터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시리아에서 대대적 공습에 나서 IS를 파괴하면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좋은 일만 해주는 꼴이 될 수 있어서다.
IS가 코앞까지 진격한 인접국 터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IS를 몰아내려다 반군의 힘이 커지게 되는 딜레마에 처했다.
국제연합전선의 무차별 공습에도 아랑곳 않고 터키 국경의 전략적 요충지 코바니를 장악한 IS 때문에 미국과 터키가 전면전의 수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美, IS 딜레마…아사드 어쩌나=미국의 IS 격퇴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요인은 아사드 대통령이다. 미군 공습으로 IS 세력이 힘을 잃으면 이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아사드 정권엔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미국이 IS에 신경쓰는 새 아사드 정권이 세력을 불릴 수도 있다. 3년째 이어지는 시리아 내전의 주범으로 아사드 대통령을 지목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햄릿’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면서도 섣불리 시리아 공습을 단행하지 못한 이유다.
실제 아사드 정권은 비밀리에 화학무기 시설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이 같은 우려를 가중시킨다.
7일(현지시간) CNN 방송에 따르면 시그리드 카그 유엔 특사는 시리아 정부가 지금까지 유엔에 보고하지 않은 연구ㆍ개발시설 3곳과 생산시설 1곳 등 총 4곳의 화학무기 시설이 남아있다고 유엔안보리에 보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경쟁자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ㆍ애리조나)은 이 같은 상황을 ‘자멸적 모순’이라고 규정하고 “아사드 축출을 위한 효과적 정책을 내놓지 못한 오바마 정부는 IS를 파괴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매케인 의원은 이날 린지 그레이엄 의원(공화ㆍ사우스캐롤라이나)과 공동 작성한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아사드 대통령이 IS 공습을 틈타 미국의 잠재적 동맹들(반군 세력)을 제거할 수 있다”며 아사드 견제를 동반하지 않은 IS 격퇴전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군 지상군이 투입되지 않고 아사드 정권이 호시탐탐 공격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시리아 반군들이 마음 놓고 IS와 싸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지원하는 자유시리아군(FSA)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아사드 대통령이 방관하리라 막연히 기대하는 것도 ‘대실수’가 될 것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갈림길 선 터키…“IS냐, PKK냐”=시리아 인접국 터키도 IS로 인해 속사정이 복잡해졌다. IS가 시리아와 터키 국경도시인 코바니 장악을 눈앞에 둔 가운데, IS 격퇴전을 통해 터키가 30여년 내전 중인 쿠르드족 반군의 세력이 급성장할 수 있어서다.
미국 중동터키연구소 설립이사인 괴뉠 톨 조지워싱턴대 겸임교수는 7일 CNN 기고를 통해 시리아에서 IS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이 군사ㆍ외교적으로 힘을 받는 것을 터키 정부가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PKK는 코바니 등 시리아 북부에 자치정부를 수립한 쿠르드족 정치세력 ‘민주동맹당’(PYD), 쿠르드자치정부 군조직 ‘페쉬메르가’, 쿠르드 민병대 ‘국민보호부대’(PPU)와 함께 범쿠르드 전선을 조직하고 IS에 맞서 싸우고 있다. 터키 정부는 이 같은 협력 구축을 통해 페쉬메르가가 서방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무기를 PKK에 넘겨줄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서방에서는 PKK가 시리아에 투입할 만한 지상군으로 떠오르면서 PKK를 테러조직 명단에서 제외해주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도 문제다. 터키 정부는 IS와 PKK뿐 아니라 아사드 정권도 ‘적’으로 여기고 있다. 터키군이 IS와 PKK에 동시 대응하고 있는 사이 아사드 정권이 커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가디언은 터키 의회가 지난 2일 IS 대응을 위해 이라크ㆍ시리아 파병안을 승인했음에도 아직 구체적 작전계획이 나오지 않은 것은 서방이 아사드 정권을 견제해준다는 보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시리아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