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마가 간다’ 日 근대화 이끈 료마 주인공 대하소설 격동기 역사개척한 결단력에 주목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 메이지유신 전후 역사 입체적 서술 개화 주역들의 야망 · 추진력 분석
일본 최대 정보통신(IT)기업 소프트뱅크를 이끌고 있는 손정의 회장. 1957년 일본 남부 규슈의 사가현에서 태어난 손 회장은 조부모와 부모 모두 한국인인 재일교포 3세다. ‘조센진’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차별과 냉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손 회장은 1974년 미국행을 결심한다. 손 회장의 미국행은 시바 료타로의 대하소설 ‘료마가 간다’의 영향이 컸다.
작품의 주인공 사카모토 료마(1836~1867)는 일본에서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로, 봉건 체제의 뿌리 깊은 계급의식과 신분의 벽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공로로 수많은 일본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일본 시코쿠 고치현 지방의 하급 무사 출신인 료마는 유연한 사고와 뛰어난 협상력, 그리고 강력한 돌파력으로 막부의 통치권을 천황에게 돌려주는 이른바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이뤄낸 풍운아였다. 또한 료마는 메이지 신정부 강령의 모태가 되는 선중팔책을 작성해 메이지 유신의 실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료마는 막부의 마지막 쇼군 하야 직후 암살당하며 불꽃 같은 삶을 마쳤다.
미국에서 UC버클리 경영학부를 졸업한 손 회장은 1981년 일본으로 돌아와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그러나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 설립 1년6개월 만인 1983년 ‘만성 간염’ 판정을 받아 위중한 상태에 놓인다. 의료진은 손 회장의 남은 수명을 5년 이내로 잡았다. 그때 손 회장은 다시 ‘료마가 간다’를 집어들었다. 손 회장은 ‘료마는 죽기 전 마지막 5년 동안 엄청난 일을 이뤄냈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앞으로 5년 동안 목숨을 바친다는 각오로 일을 하자고 다짐했다. 이후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일본의 인터넷 혁명을 주도하는 거물 기업인이자 일본 내 손꼽히는 갑부로 우뚝 섰다.
▶료마를 둘러싼 신화는 여기서 시작됐다=시바 료타로 ‘료마가 간다’는 지난 1962년부터 4년간 일본 산케이신문에 연재된 동명의 소설을 엮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일본 내에서 1억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일본인 사이에 이른바 ‘료마 신화’를 정착시켰다. 많은 사람이 료마로부터 떠올리는 풍운아의 이미지는 이 작품으로부터 비롯됐다.
작품의 배경인 막부의 막바지 시절, 일본은 수많은 내우외환으로 몸살을 앓았다. 국론은 개국인가 양이인가, 존왕인가 막부인가를 두고 크게 갈려 격렬한 대립이 계속됐다.
이 작품 속에는 료마를 중심으로 막부에 대항하는 개혁파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교토를 무대로 벌어지는 전투 과정에서 수많은 인물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그중에서 살아남은 몇몇 인물이 메이지 유신 뒤 일본 개혁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 무스 요노스케 등이다.
료마는 서양 근대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일본 근대화의 길을 열었다. 이와 더불어 료마는 간사한 관리들을 물리쳐 일본을 깨끗이 세탁해야 한다며 ‘막부 타도’를 강력히 주장했다. 쇄국과 개화의 갈림길에서 과감한 결단으로 역사를 개척한 료마의 극적인 생애는 현대 일본인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료마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파헤친 명저=‘료마가 간다’는 사카모토 료마의 위상을 국민적인 영웅으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소설에서 다뤄진 료마가 과연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는 실체인가에 대해선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저명한 동양사학자이자 일본 근현대사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마리우스 잰슨의 저서를 완역한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은 격동의 시기를 대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서술한다. 이 같은 저자의 집요한 노력 덕분에 이 책은 서구뿐만 아니라 일본 학자 사이에서도 일본 근현대사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저자는 에도 막부의 말기적 상황, 서구 열강들의 개항 요구, 권력 다툼과 계급 간 갈등, 정치ㆍ사회 개혁 등 유신 전후의 시대 상황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보여주면서 메이지 유신의 발생과 과정, 결과를 입체적으로 풀어나간다.
저자는 사카모토 료마와 그의 친구이자 메이지 유신의 중요한 조력자인 나카오카 신타로 및 유신 주역들의 업적과 사상을 살펴보며, 메이지 유신이 가져온 변화보다 그 의미와 원동력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유신의 전개 과정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한다. 또한 역사적 배경뿐 아니라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인물들의 서신 등 섬세한 기록 등이 책에 담겨 있어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준다.
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