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창립 20주년 기념 한국문학전집 1차분 20권 출간
천명관·박민규·박현욱 등 젊은 작가들 최근 작품도 수록 열린 목록으로 기존 전집과 차별화
김동인 ‘감자’, 염상섭 ‘삼대’, 현진건 ‘운수 좋은 날’ 등 기존의 한국문학전집은 중ㆍ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작품의 목록과 적지 않은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 이들 작품의 역사적 의미와 높은 문학적 성취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전가의 보도처럼 한국문학전집이라면 으레 포함되는 작품의 목록에 식상함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은 이러한 기존 한국문학전집의 ‘기본 스펙’을 과감히 제치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작품들을 대거 채워넣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로 평가된다.
지난 21일 서울 서교동의 한 북카페에서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황종연 편집위원(동국대 교수)은 “문학동네 창립 2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성과에 대한 반성과 평가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한국문학전집을 기획했다”며 “지금의 한국문학을 과거와 연결하고 미래로 확장시켜 나가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고 발간 취지를 밝혔다.
문학동네가 1차분으로 발간한 작품은 총 20권이다. 이 중 12권은 기존에 문학동네를 통해 소개된 책이며, 나머지 8권은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졌다. 김승옥 중단편선 ‘생명연습’, 김훈 장편소설 ‘칼의노래’, 황석영 장편소설 ‘개밥바라기별’, 박완서 중단편선 ‘대범한 밥상’, 이문구 중단편선 ‘공산토월’, 김주영 장편소설 ‘홍어’, 최인호 중단편선 ‘견습환자’, 이승우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 신경숙 장편소설 ‘외딴방’, 김영하 장편소설 ‘검은꽃’ 등의 작품이 1차분에 이름을 올렸다. 작품의 번호는 작가의 등단 순서에 따라 매겨졌다.
이번 전집의 특징은 ‘동시대와의 호흡’으로 요약된다. 문학동네는 지난 20년 동안 계간지 ‘문학동네’를 통해 의욕적으로 신인 작가들을 배출해왔다. 또한 이들 신인 작가의 작품 상당수는 문학동네가 아니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은희경, 조경란, 박민규, 천명관 등 문학동네를 통해 빛을 본 작가들은 한국문학의 간판으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문학동네는 젊은 작가 지망생들의 ‘워너비’로 떠올랐다.
문학동네가 그동안 보여준 젊고 신선한 색깔은 이번 전집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이번 전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2004년 작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 2005년 작 박민규의 소설집 ‘카스테라’, 2006년 작 박현욱의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등 최근작들이다.
이 밖에도 2008년 작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등 기존 유명 작가의 최근작을 포함시킨 것도 눈에 띈다. 동시대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작품마다 젊은 평론가의 새로운 해설을 추가한 것도 특징이다. 기존 출간본의 오류도 손질됐다.
신형철 편집위원(문학평론가)은 “문학사에서 정전으로 평가가 굳어진 작품들로부터 출발하는 대신 동시대의 작품들을 앞세우고, 그로부터 과거와 미래 두 방향으로 범위를 확장시킨다는 데에 이번 전집의 특징이 있다”며 “출간된 지 10년도 안 된 작품을 전집에 포함시킨 것이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감의 표현으로 봐 달라. 미래에 어떤 작품이 한국문학전집에 들어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그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향후 문학동네는 ‘살아 있는 현재의 문학’이라는 관점에서 동시대에도 충분히 문제성을 지닌다고 판단되는 해방 전 근대문학 작가들의 작품과 2010년대의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을 전집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장르 또한 시와 소설을 가리지 않고 확대될 전망이다.
신수정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문학과지성사, 창비 등 주요 출판사들이 각자 고유의 색을 드러내는 한국문학전집을 내고 있는 가운데, 문학동네는 좀 더 유연하고 열린 목록으로 기존 전집들과 차별화를 두겠다”며 “미래의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의 취향과 감수성을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