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지혜…나이듦은 복이다” 4080 명사 20명 명쾌한 세월사용법 일흔한살 ‘야신’ 김성근 감독 풍부한 경험 ‘영원한 현역’ 기백 끊임없는 노력·여유 깊은 울림도

경험의 나이테…주름진 그들이, 주름잡는 이유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말이 있지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은 전쟁 통에 길을 잃었을 때 늙은 말을 풀어 길을 찾았습니다. 젊은 말은 빠르지만 늙은 말은 지름길을 압니다. 세월은 지혜입니다. 머물지 않는 세월, 나이 듦은 복입니다.”(이영만 (주)헤럴드 대표)

나이도, 하는 일도 다른 20명의 명사가 전하는 ‘세월 사용법’을 담은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필자들은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를 통해 저마다 다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나이 듦이 결코 불행하거나 쓸쓸하지 않음을 전하고 있다.

‘야신’ 김성근(71) 고양 원더스 감독은 ‘나는 내 나이를 모른다’는 글로 나이에 연연하지 말고 세월을 보내며 쌓은 풍부한 경험으로 다른 가능성들을 틔워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이를 헤아리는 것은 무기력한 이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꼬집는 김 감독의 태도에선 ‘영원한 현역’의 기백이 엿보인다.

“확고한 모습을 갖고 있으면 옆에서 흔들어봤자 동요할 일이 없다. 아무 상관없다. 세상 살아가면서 남 따라가는 건 약자들이나 하는 거다. 어째서 남의 인생을 따라가는가. 누가 뭐래도 내가 가고자 할 길을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강하다. 나는 강한 인생을 살고 싶다.”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ㆍ‘서울의 달’의 김운경(60) 작가는 ‘봉변처럼 찾아온 세월’이라는 글을 통해 “ ‘할아버지’와 ‘영감’ 같은 어느 날 불쑥 찾아온 낯선 호칭들에 의기소침하지 말고 부지런히 인생의 황혼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나이를 먹다, 나이가 들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 철학자 김교빈(60) 호서대 교수는 “세월이 얼마나 남았는가를 따지지 말고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역설한다. 김봉석(47) 문화평론가는 “세월이 공평한 이유는 그 세월의 가치를 결국 자신이 결정하기 때문”이라며 “인생이라는 것은 세월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지금 살아가는 길에 의해서 미래가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세월에 대한 소회를 풀어놓은 글뿐만 아니라 세월과 시간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접근도 인상적이다.

김연철(49) 인제대 김연철 교수는 개인의 시간이나 세월에 대한 감상 대신 ‘사회적 세월’이란 개념으로 분단 60여년의 역사적 시간을 이야기한다. 종교사회학자인 정태식(57) 경북대 교수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시간관인 양적인 시간 ‘크로노스’와, 질적인 시간 ‘카이로스’를 소개하며 “의미가 충만한 카이로스의 시간이 당도하기 위해서는 우정과 사랑을 통한 합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귀환(59) 전 한겨레신문 편집국장은 항우와 유방의 결전을 시간관의 대립으로 바라보며 과거에 집착한 항우와 달리 유방은 미래를 품을 줄 알았기 때문에 승자로 올라섰다고 말한다.

사회ㆍ문화적으로 추억팔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추억팔이의 범람은 현재의 삶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필자들이 피력하는 ‘나이 듦의 즐거움’은 현재의 불만족에 대한 투덜거림을 멈추고 다시 한 번 우리의 삶과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필자 중 최고령이자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김욱(85) 작가의 ‘신(新)노인’ 선언은 세월에 지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로 깊은 울림을 준다.

“내 앞에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월들이 놓여 있다. 나는 더 이상 그냥 ‘노인’이 아니라 ‘신노인’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오면서 나보다 한 살이라도 어린 사람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한 가지 깨우침은 ‘오늘’은 나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과 어긋난, 그릇된 판단이더라도 상관없다. 세상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파악하고 싶다’라는 자기 나름의 이해와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늙을수록 이런 습관이 더욱 중요해지는 까닭은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이, 오늘이, 올해가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거대한 변화가 불어오더라도 노인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