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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대중이 ‘현대’라는 두 글자에 기대하는 것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얼마 전 노트북을 교체했습니다. 몇달 전부터 인터넷 사이트, 가전매장 등을 돌아다니며 성능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인 제품을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대형 마트를 가보니 다소 생소한 해외 브랜드의 노트북도 많았습니다. 전자기기 사양에 문외한 탓에 정확한 판단을 하긴 어려웠지만 언뜻 봐도 국내 제품과 사양 차이가 크진 않았습니다. 가격은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국내 브랜드 제품이 90여만원이지만 해외 브랜드는 50만원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가격도 소비를 결정짓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대기업 제품이 믿을만 하겠지’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입니다.

비단 전자기기만의 경우는 아닐 겁니다. 대기업은 이름 자체로 대중에게 신뢰를 줍니다. 또 대중은 그만큼 기대감이 큽니다. ‘대기업이니까 더 잘하겠지’, ‘대기업이니까 더 낫겠지’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대기업은 해외 기업이나 중소기업에 비해 대중으로부터 더 혹독한 감시를 받습니다. 같은 잘못이라도 대기업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더 신랄한 비난과 비판이 가해지는 이유입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법이니까요.

요즘 현대제철을 바라보는 대중의 마음도 이런 이유로 안타깝습니다. 현대제철은 올 해 세차례의 사고를 겪었습니다. 지난 5월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아르곤가스 누출로 협력업체 근로자 5명이 사망했습니다. 지난 달 26일에는 현대제철이 지분 29%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그린파워 발전소에서 점검 작업을 하던 근로자 1명이 가스 누출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일 현대제철 철근제강공장 지붕 위에서 안전점검을 하던 현대종합설계 소속 직원 1명이 추락사하는 사고도 발생했습니다.

지난 5월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는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대해 특별감독을 진행했고, 이 사고로 현대제철 직원을 포함해 14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3고로 완공을 앞두고 졸속 작업을 벌인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는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며 현대제철은 홍역을 치렀습니다.

전례가 있어서인지 현대그린파워 가스 누출 사고 당시 현대제철은 매우 분주했습니다. 첫 언론 보도가 ‘현대제철 당진공장’으로 나가자 현대제철 측은 출입기자들에게 연락을 해 “현대그린파워는 우리가 지분 29%를 보유하고는 있지만 자회사나 협력사 개념이 아니라 특수목적법인이다. 자체 운영되고 있는 회사인만큼 현대제철이 경영이나 안전관리 등에 책임은 없다”며 별개의 회사임을 강조했습니다. 당진공장 부지 내에 있는 것은 맞지만 다른 회사인 만큼 현대제철에게 이번 사고의 책임은 없다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현대그린파워는 현대제철과 중부발전이 각각 지분 29%, 나머지 42%는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현대그린파워가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현대제철의 생산 공정에 직접 연관되는 부분도 없습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특별감독을 진행했던 고용노동부도 “현대그린파워와 현대제철은 다른 회사”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이후 일주일 만인 지난 2일 오후 현대제철 철근제강공장 지붕 위에서 정기 안전점검을 하던 현대종합설계 소속 직원이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현대제철의 대응은 현대그린파워 사고와 유사했습니다.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다”라는 입장이 반복됐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잇따른 사고를 통칭해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죽음의 공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도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지난 3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을 안전관리 위기사업장으로 지정해 종합안전진단을 하는 등 특별관리에 나서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5월 사고가 발생했던 생산 현장에 대해서만 특별감독을 진행한 것과 달리 당진 공장 단지 전체에 대한 정밀종합안전진단을 실시한다는 계획입니다.

앞뒤 안 가린 비난은 경계해야할 일입니다. 최근 있었던 두 건의 사고가 현대제철의 관리 부실로 발생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중이 정확한 지분 관계와 운영 주체를 면면히 알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일단 현대제철 당진공장 내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안타깝게 사망한 피해자들이 소속된 회사와 일하던 터전도 모두 ‘현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만큼 대중의 실망과 공분이 한방향으로 집중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현대’라는 두 글자에 거는 기대와 신뢰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대응 보다는 “우리 공장 내에서 발생한 일인 만큼 책임감을 갖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먼저 보이는 일이 국내 철강산업은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대표적인 철강기업 현대제철의 격에 맞는 행동은 아니었을지, 안타까움이 앞섭니다.

현대제철은 올 해 3고로를 완공했고, 현대하이스코와의 냉연 부문 합병으로 명실공히 자동차 강판 및 소재 전문 일관제철소로 거듭났습니다. 이로 인해 내년 국내 철강업계에는 적지 않은 지각변동이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회사의 격을 높이는 일은 비단 매출과 영업이익을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몸집을 키워가는 만큼 위기를 대응하는 세련된 능력, 또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책임의식을 키우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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