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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꿈이 있는 장미여관 ‘오빠’들은 결코 지지 않아!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면 특별히 더 마음이 가는 뮤지션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마음이 가는 이유는 좋은 음악을 듣게 해줬다는 고마움, 유명인사 답지 않은 소탈함 등 여러 가지입니다. 그중에서도 밴드 장미여관은 마치 기자의 일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쓴 듯한 가사와 가사만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급의 연주ㆍ음악으로 기자를 사로잡았습니다. 또한 장미여관의 멤버들이 지방에서 상경해 산전수전공중전을 겪은 30대 아저씨라는 사실은 기자의 음악에 대한 공감의 폭을 넓히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자 역시 지방 출신에 나름 꽤 많은 우여곡절을 헤쳐 온 30대 아저씨이니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멤버들 사이에 끼어있으면 새로운 멤버로 오해 받을 만 한 아쉬운 외모까지 닮았습니다. 장미여관에 대한 기자의 감정은 일종의 동지애에 가까웠다고 말해도 과언을 아닐 겁니다.

장미여관이 단순히 유머로 승부하는 가벼운 밴드가 아니라는 사실은 KBS 2TV 밴드 서바이벌 ‘톱밴드’ 시즌2 출연 당시 이미 눈치 챘지만, 이들이 지난 봄에 발매한 정규 1집 ‘산전수전공중전’은 이 같은 눈치를 확신으로 만들어준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장미여관의 음악은 끝난 후 적지 않은 잔상을 남기는 편인데, 이 같은 잔상은 가사에 담긴 해학과 짙은 페이소스로부터 옵니다. 

밴드 장미여관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뮤즈라이브홀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하고 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서울살이’의 “만만치가 않네 서울 생활이란 게. 이래 벌어가꼬 언제 집을 사나”, ‘아저씨’의 “눈뜨면 일하고 퇴근해 집에 와 기댈 곳 하나 없네.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해에도 달라진 게 없네”, ‘너 그러다 장가 못 간다’의 “살다보면 언젠가 인생 역전하는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일랑은 저기 지나가는 개나 줘버려”, ‘나 같네’의 “차곡차곡 쌓여있는 빈 술병이 나 같네. 주룩주룩 쏟아지는 슬픈 비가 나 같네” 등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생활밀착형 가사가 주는 해학과 페이소스는 경북 경산 지방의 민요 ‘시집살이 노래’의 “시집살이 개집살이.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님보다 더 푸르랴”의 그것과 크게 다르게 들리지 않습니다.

사실 장미여관의 노래엔 괴로운 기억을 새삼스레 되살리는 씁쓸한 가사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함을 잊어버릴 수 있는 이유는 비루한 현실에 지지 않은 긍정의 힘이 음악 전체에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5월 장미여관과 가진 인터뷰에서 멤버들은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낸 일이 있습니다. 당시 육중완은 “‘무한도전’의 ‘못친소(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 편에 꼭 출연하고 싶다”며 “여기 ‘메시급’의 ‘못친소’ 다섯 명이 대기하고 있다”고 호기롭게 웃어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못친소’가 아닌 대한민국 뮤지션들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에 출연하게 된 것입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인디밴드였던 장미여관은 순식간에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망원동의 지저분한 옥탑방과 빨지 않아 때가 찌든 일명 ‘고름베개’는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고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장미여관이 ‘무한도전’의 멤버 노홍철과 함께 부른 ‘오빠라고 불러다오’는 일약 히트곡으로 떠올라 주요 음원차트를 휩쓸었습니다. 음악 하나만을 바라보고 상경한 촌놈들의 첫 전성시대가 열렸습니다. 국내 최고 인기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이어 음원 차트를 휩쓰는 장미여관의 행보에 왠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뜨끈해져 왔습니다.

지난 9ㆍ10일 이틀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뮤즈라이브홀에서 장미여관의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이번 콘서트는 장미여관의 ‘무한도전’ 출연 이후 가지는 첫 콘서트였습니다. 콘서트 첫 날 장미여관은 바로 옆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신승훈 콘서트와 맞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진을 기록했고, 둘째 날도 매진 행렬을 이어갔습니다. 기자는 둘째 날 콘서트를 찾았습니다. 콘서트 시작 전부터 공연장 입구는 ‘오빠’를 기다리는 팬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멤버들의 모습은 ‘무한도전’ 출연 이전과 크게 다를 것 없었습니다. 밴드의 맏형 윤장현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기실을 찾은 기자를 맞았습니다. 육중완은 누가 아깝게 피자 도우 가장자리 빵만 남겼냐며 투덜거렸고, 강준우는 터질듯 몸에 꽉 끼는 무대의상을 입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카메라 마사지를 받아 잘 생겨졌다는 기자의 덕담에 멤버들은 손사래를 치며 “카메라에 얻어맞아야 잘 생겨진다”고 농담을 건넵니다. 달라진 것은 많이 바빠졌다는 사실 외엔 없어 보였습니다.

장미여관은 ‘부비부비’를 시작으로 ‘오래된 연인’과 ‘봉숙이’ 등 대표곡부터 앙코르곡 ‘빈대떡 신사’까지 2시간 동안 유쾌한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객석은 지정석이었지만 콘서트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자연스럽게 스탠딩으로 전환됐습니다. 또한 장미여관은 오는 19일 발표예정인 미니앨범의 수록곡 ‘장가가고 싶은 남자 시집가고 싶은 여자’, ‘이별의 변’을 이날 무대에서 처음으로 공개해 환호를 받았습니다. 특히 앙코르 첫 곡 ‘오빠라고 불러다오’는 여느 록페스티벌 이상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객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밴드 장미여관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뮤즈라이브홀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무대에 올라 '오래된 연인'을 부르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멤버들 모두 적지 않은 나이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보니 유쾌함 뒤에 숨겨진 연주는 만만치 않습니다. 부산 라이브 카페 활동 시절부터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친 육중완과 강준우를 비롯해 윤장현ㆍ임경섭ㆍ배상재 등 다른 멤버들 모두 다양한 세션 활동과 밴드 활동으로 잔뼈가 굵습니다. 심지어 배상재는 재즈를 전공한 모던록 밴드 기타리스트 출신입니다. 모두들 어느 무대에 놓아도 잼(Jamㆍ즉흥 연주)이 가능한 실력파들입니다. 음악에도 록ㆍ포크ㆍ재즈ㆍ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들이 골고루 녹아있지요. 뮤지션을 지탱하는 힘은 이슈가 아니라 결국 음악입니다.

장미여관은 다음달 2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에서 ‘빈방없음’이란 타이틀로 연말 콘서트를 펼칩니다. 밴드 결성 이래 가장 큰 규모의 공연입니다. 지난 5월 서울 광장동 유니클로 악스홀에서 열린 기타리스트 슬래시(Slash)의 내한 공연에 기자와 동행했던 윤장현은 “언젠가 이곳에서 단독 콘서트를 벌여보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낸 일이 있습니다. 유니클로 악스홀의 좌석 수는 약 1090석 가량입니다.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의 좌석 수는 이에 약간 못 미치는 800석 가량이지만 4일 연속으로 펼쳐지는 콘서트입니다. 장미여관은 불과 반년 만에 꿈 이상의 것을 이뤄낸 셈입니다. 이들이 지금 모습 그대로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지켜보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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