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고생 기술개발…신기술만 털리고…
현지 협력사 · 직원 짝퉁생산 헐값 판매 유사품 제조 · 유통 불가 계약서 유명무실 관계 당국 호소 · 법적 소송도 효력없어
핵심부품 국내공급 이원화 전략 시급 작동 알고리즘 등 철저한 블랙박스화도
중소 가전업체 A 사는 세계적인 히트를 한 소형 가전을 2011년 2년여 연구ㆍ개발(R&D) 끝에 자체 기술로 국산화했다. 국내에서 R&D와 설계 및 디자인만 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국내외 특허 출원을 한 뒤 올 초 모델을 완성하고, 지난 4월 중국 제조업체에 턴키 방식으로 위탁 생산(OEM)을 맡겼다. 5년간 독점을 주는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중국 업체는 계약을 어기고 2개월 뒤 모방 제품을 생산, 현지는 물론 수입업체를 통해 국내까지 출시했다. 계약서에는 5년간 독점 생산을 주는 대신 유사 제품을 제조ㆍ유통할 수 없도록 명시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특허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히, 게다가 턴키 방식으로 중국에다 생산을 전담시킨 게 화근이었다. 조립은 물론 현지 부품 조달 루트까지 훤히 알고 있어 손쉽게 모방이 가능했던 것이다.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중국 OEM=업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의 기술이 잇달아 털리고 있다. 원가 절감과 분업적 차원의 섣부른 중국 OEM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이제 문제는 짝퉁 제품들이 중국 현지는 물론 국내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는 점. 글로벌 소싱이 활성화됨에 따라 언제라도 대행업체를 통해 국내와 제3국까지 유통이 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원천 기술을 갖고도 중국은 물론 국내 시장에서도 설 자리를 잃는 사태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A 사 제품과 함께 짝퉁 제품이 상륙해 함께 유통되는 상황이다. 제품 개발비용이 들어가지 않아 원 제품 대비 20% 정도 저렴하게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마켓은 물론 양판점까지 진출, 원 제품을 밀어내고 있다고 A 사 측은 전했다.
A 사 관계자는 “계약 조항을 갖고 법적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특허 확정 전이어서 보호받을 방법이 딱히 없다. 중국에서 값싸게 생산하려다 낭패를 보고 말았다”고 했다.
중국 상하이 인근 쑤저우에 중국 현지 법인을 둔 기계설비 제조업체인 B 사도 기술이 유출돼 곤란을 겪은 경우. 국내 한 대기업의 2차 벤더인 이 회사는 새로운 자동차 조립 장비를 개발해 모기업 납품을 추진하던 중 중국인 직원들에 의해 6개월 만에 기술이 새어 나갔다.
중국인 직원들은 버젓이 B 사 현지 공장 바로 옆에 새 회사를 차리고 낮엔 B 사 직원, 밤에는 새로 차린 회사에 근무하며 똑같은 제품을 제조해왔던 것. B 사는 모방 제품이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전에 철수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관련 부문을 청산하고 국내로 돌아왔다. 이 회사는 이후 국내에서 이 제품을 만들어 최근 독일 다임러벤츠 납품에도 성공했다.
B 사 이모 대표는 “중국 공장 직원들이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현지 자동차업체에 팔러 다니는데, 관계 당국에 호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면서 “이중 삼중의 기술 보호 장치가 없는 상태에 들어갔다간 배(원가 절감)보다 배꼽(기술 탈취)이 더 큰 일을 겪게 된다”고 전했다.
▶핵심 부품은 국내에서 공급하는 이원화 전략 필요=이처럼 뚜렷한 보호 장치 없이 중국에서 OEM을 하거나 공장을 지을 경우 속수무책이다. 특히 핵심 부품의 국내 생산 기반 없이 턴키로 발주할 경우 기술 도면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핵심 소재나 부품, 소프트웨어는 국내에서 만들고 원천 기술을 더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또 옛 모델부터 이전하면서 시장을 개척하는 등 기술 이전의 완급 조절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코트라 출신의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의 생산 인프라가 한국과 거의 같아져 신기술에 대해서는 혈안이 돼 결국 모방해낸다”며 “옛 모델부터 갖고 들어와 시장을 살피면서 현지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문형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핵심 부품은 중국에 맡기지 말고 국내에서 공급하는 이원화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기업들은 무엇보다 기술 카피가 어렵게 상표나 특허 내용, 작동 알고리즘에 대해 철저히 블랙박스화(암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문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