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 진행한 명DJ이자 한국 포크음악 산실 ‘쉘부르’ 만든 대중음악계 거두…폐암 투병끝 별세
대중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희로애락을 음악에 실어나르던 전령사, 한국 포크음악의 산파이자 명 DJ였던 이종환(75)이 30일 새벽 서울 노원구 하계동 자택에서 폐암으로 숨졌다. 2011년 11월 폐암 진단을 받은 이종환은 TBS 교통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이종환의 마이웨이’ DJ에서 물러난 뒤 투병해왔다. 이후 지인이 간간이 그의 병세 호전 소식을 전하기도 했지만, 그는 끝내 DJ 자리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종환의 아들 한열 씨는 “아버지가 병원에서 투병 중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셔서 10일 전 퇴원을 결정했다”며 “가족과 짧지만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가 편안히 가셨다”고 말했다. 유언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0~80년대 젊음의 변방을 서성였던 많은 이에게 이종환은 추억을 하나로 아우르는 이름이었다. 1964년 라디오 PD로 MBC에 입사한 이종환은 ‘한밤의 음악편지’ PD를 시작으로 ‘탑튠퍼레이드’의 PD와 DJ를 겸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별이 빛나는 밤에’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 당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 그의 입을 통해 청취자에게 전달됐다. 특히 10년 이상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했던 ‘지금은 라디오 시대’는 이종환에게 ‘방송대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2003년 음주방송으로 물의를 일으켜 방송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2005년 TBS 교통방송 라디오로 복귀해 녹슬지 않은 재담을 과시했다.
사람 사귀는 재주가 좋았던 이종환의 주변엔 ‘이종환사단’이라고 불릴 만큼 늘 따르는 가수가 많았다. 특히 이종환이 1973년 종로2가에 문을 연 음악감상실 ‘쉘부르’는 당대 한국 포크음악의 산실이었다.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기타를 든 젊은이가 ‘쉘부르’의 문을 두드렸고, 이종환은 대중음악계의 거두가 됐다. ‘이름 모를 소녀’의 고 김정호를 비롯해 어니언스, 쉐그린, 위일청, 강승모, 남궁옥분, 최성수 등 숱한 히트 가수가 ‘쉘부르’를 통해 데뷔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이문세와 변진섭도 ‘쉘부르’ 오디션의 응시자였다. 대중문화계의 큰손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도 한때 ‘쉘부르’ 무대에 섰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층 제2호실에 마련될 예정이다. 발인은 6월 1일 오전 6시30분이다. 인터넷과 SNS상에선 고인의 추억을 공유하는 이들의 애도가 줄을 잇고 있다. 추억을 소개하던 그가 추억으로 변해 떠났다.
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