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좋은회사 선정 ‘블루브릭스’
145명 직원 중 130여명이 재택
네덜란드 여성 52% ‘시간 선택제’
출산율 제고에 긴 육아휴직보다
육아·근로 가능한 시스템이 중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동북쪽으로 30분 가량 차를 달리다 보면 마치 숲 속 별장 같아 방문한 이로 하여금 ‘제대로 찾아온 것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회사가 있다.
지난해 글로벌 신뢰경영 평가 기관인 미국 GPTW에서 일하기 좋은 회사로 선정된 컨설팅 기업 블루브릭스다. 내부로 들어가면 더 혼란스럽다. 분명히 145명의 직원이 재직 중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정작 회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4면
로날드 판 스테이니스 블루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새가 지저귀는 회사 앞 마당에서 한국에서 온 취재진을 맞았다. 그는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많다”며 회사 사무실에 직원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근무 환경은 고객과의 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판단을 결정하는 요인인 만큼 재택근무 장소도 반드시 ‘집’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회사 직원들은 최소 주당 32시간을 일해야 하지만 35시간 이하인 시간제로 일할지 40시간 전일제로 일할지는 근로자가 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네덜란드 법은 근로자가 4개월 전 사용자에게 근로시간을 고지하도록 돼 있지만 블루브릭스는 이 기간을 한 달로 줄였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는 네덜란드 출산율이 대한민국보다 훨씬 높은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지난 2018년 이후 1명 아래로 떨어져 2022년 0.78명, 2023년 0.72명을 기록 중이다. 반면, 네덜란드는 2022년 기준 1.49명이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네덜란드의 높은 출산율 비결로 ‘유연근무제’를 꼽는다. 현재 네덜란드 여성 근로자 둘 중 한 명은 시간 선택제로 일하고 있다. 2022년 기준 네덜란드 전체 취업자 중 주당 35시간 이하로 일하는 여성 근로자 비중은 52.3%다. 우리나라 여성 시간제 근로자 비중은 23.3%로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시간제 근로자가 대다수인 네덜란드는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기에 큰 무리가 없다.
실제 지난 11일(현지시간) 헤이그에서 만난 네덜란드 사회고용부(SZW) 관계자는 “우리는 일·가정 양립과 관련 육아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경제적 독립, 가사 성평등 등 5가지 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서 “남성이 집안일이나 육아에 균등 참여할 수 있도록 양육할 때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네덜란드의 육아휴직제도가 우리나라나 EU 수준국에 비해서 월등히 좋은 것도 아니다. 사실, 네덜란드의 육아휴직제도는 EU 회원국의 의무를 충족하는 수준에 그친다.
네덜란드는 지난 2019년 4월 EU가 회원국에 유급 육아휴직을 최소 2개월 이상으로 보장하라는 지침을 만들면서 2022년 8월부터 유급 육아휴직제도를 만들었다. 우리가 1987년 육아휴직제도를 만들어 2001년 11월부터 육아휴직급여를 지급해온 것과 비교하면 20년이나 뒤처진다.
네덜란드 육아지원제도는 ‘출산휴가-육아휴직-배우자 출산휴가’으로 이어지는데, 육아휴직조차 ‘유연성’을 포함하고 있다. 자녀가 8세 이전 쓸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은 주간 근로시간의 26배로 주당 38시간 근무 기준 26주(988시간)다. 우리 정부도 육아휴직을 네 차례에 나눠 쓸 수 있도록 하면서 ‘2주’ 단기 육아휴직을 도입했지만, 네덜란드는 시간 단위로 쓸 수 있다.
육아휴직 급여도 최초 9주만 준다. 액수는 일급의 70%다. 상한액은 일급 중위소득 70%인 179.82유로(약 26만7000원)이다. 이조차 자녀 연령이 만 1세를 넘어서면 받을 수 없다. 배우자 출산휴가는 출산 6개월까지 6주를 쓸 수 있다. 첫 주만 임금의 100%를 보전하고 나머지 5주는 육아휴직 급여처럼 70%를 보전한다.
육아휴직 급여의 재원은 사용자가 전액 부담하는 사회기여금이다. 우리의 육아휴직 급여 재원이 사용자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하는 고용보험기금이고, 독일이 정부 재정으로 부담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단, 그 액수나 기간을 짧게 설계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노동시장 복귀율’에 있다.
이비 콥만 네덜란드 사회경제위원회(SER) 연구원은 “육아휴직 기간을 20~30주로 제시한 건 부모의 노동시장 참여가 너무 오랫동안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연구에 기반한 것”이라며 “육아휴직 정책을 설계할 때 노동시장으로의 복귀를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이 의견에 적극 공감한다. 강민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력 단절을 가져오는 긴 기간의 육아휴직보다는 유연근무를 활용하면서 부모가 함께 자녀를 돌보며 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헤이그·뢰스던)=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