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경·대륙아주 산업안전법제포럼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강연

1심 유죄 판결 17건 모두 중소기업

“검찰·법원, 모두 전문성 부족해”

“중기, 형사법적 정교한 준비 필수”

“중처법 유죄판결 중기에 치우쳐...형사법 중심 대비 필요”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19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중대재해예방 산업안전법제포럼 6월 초청강연에 연사로 참석해 강연을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처법)은 전문가조차 의무주체·의무범위·의무이행방법 등을 예측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여기에 수사기관과 법원조차 전문성이 결여돼 있어, 치밀하고 정교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중처법에 따른 사법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형사처벌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법안의 의무사항을 꼼꼼하게 살피고, 형사법적 중심의 종합적인 준비가 필수적이라는 제언이 나왔다.

19일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헤럴드경제와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공동주최한 ‘중대재해예방 산업안전법제포럼’ 기조강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정 교수는 이날 ‘판결로 보는 중대재해처벌법 쟁점 및 대응 방안’을 주제로, 중처법 시행 이후 최근까지 나온 주요 판결을 분석하면서 “대기업과 비교해 중소기업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에 치우친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처법은 지난 2022년 1월 27일부터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지난 1월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모든 기업으로 확대 적용됐다. 13일 기준 중처법 사건 관련 1심 판결이 나온 17건 모두 유죄 판결 대상이 중소기업인 것으로 드러났다.

중처법 위반 관련 검찰 기소 역시 중소기업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중대재해 종합대응센터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검찰이 기소한 51건(급성중독 1건, 사망 49건) 가운데 78%인 40건이‘ 근로자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그는 “현재까지 판결 사례를 보면 (재판부가) 유죄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무리한 추론으로 꿰맞추기를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중처법에 불명확하고 모호한 부분이 많아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법 집행과 해석이 횡행하고 있지만, 법원 역시 법리와 증거에 입각한 공정한 심판자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정 교수는 중처법 관련 다수(17개 중 10개) 판결이 건설업에 편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하청 사건을 다룬 판결 모두 원청과 하청의 지위와 역할을 구분하지 않고, 오로지 하청 근로자에 대한 모든 안전조치를 원청이 해야 한다는 판단만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처법과 같은 부작위범(해야 할 일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음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의 경우 요구되는 일정한 의무가 이행됐더라면, 사망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정도의 판단이 서야 의무 위반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긍정될 수 있음에도, 지금까지 판결 모두 둘 간의 인과관계의 상당성에 대해 논증을 생략하거나 비약했다”며 “근대형법의 철칙인 책임주의 원칙 관점에서 볼 때 중처법 판결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법원에서 검찰과 달리 중처법 위반죄, 근로자 사망에 따른 산업안전법 위반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를 동일한 행위로 판단하고 상상적 경합 관계로 본 것은 명백히 잘못된 판단”이라며 “검찰과 법원 모두 전문성이 부족해 피고인 측에서 치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법리에 맞지 않은 판단이 내려질 리스크가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그는 “중처법 관련 사법기관과 재판부의 전문성 결여, 중소기업의 준비 부족 등의 요인으로 ‘기소는 곧 유죄’, ‘복불복 기소·판결’ 등의 부작용이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중처법 사건 관련 17건의 판결 가운데 단 4건을 제외한 판결은 피고인의 자백사건인 관계로 법원에서 사실관계와 법리가 다퉈지지 않아 검찰의 공소사실이 그대로 판결문의 범죄사실이 됐다”며 “입증자료조차 갖추지 못한 중소업체의 경우 무죄를 주장하면 자칫 ‘괘씸죄’가 적용돼 실형 선고를 받지 않을까 우려해 대부분 무죄를 주장하기보다 자백을 통해 선처를 호소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검찰의 공소사실에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법원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중처법·산안법에 대한 전문성 부족으로 수사기관이 무리한 추론에 근거한 편의적 기소를 할 위험이 상존하는 만큼 기업에서 중처법상의 안전보건확보의무 준수에 초점을 맞춘 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사법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처법상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매뉴얼·절차서·기준 등)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며 “안전 컨설팅기관의 도움만으로는 중처법에 적절히 준비·대응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만큼 안전에 대한 접근과 더불어 법적 접근이 통합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재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