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지혜ㆍ문재연 기자] 윤아씨는 시커먼 바다에서 동생이 돌아온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동생은 수학여행을 가기 전 연한 핑크색 발톱에 하얀색 꽃을 그려놓은 모습 그대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발 쪽에 앉아있던 윤아씨는 동생의 발톱을 보고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의 휴대전화엔 아직도 동생과 함께 손톱, 발톱에 꽃을 그려놓은 사진이 담겨 있다.
15일 만난 최윤아(24)씨는 지난해 4월16일 벌어졌던 세월호 참사로 동생 최윤민(18) 양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사고 직후 윤아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림을 그리며 그리움을 달랬다. 처음에는 목을 조르는 유가족, 상처투성이의 다리 등 어둡고 처절한 그림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따뜻하고 밝은 모습의 동생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상처가 아문 것은 아니다. 벚꽃을 바라보는 동생의 그림을 그리고도 “이 봄날을 어떻게 견뎌야 할 지 모르겠다”며 “잊혀지는 것은 무섭지 않지만 윤민이란 아이가 있었던 걸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윤민이가 아예 없던 아이가 되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두렵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루하루를 동생에게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결국 윤아씨도 얼마 전 다니던 직장을그만두고 부모님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그는 “사람들이 동생의 죽음을 희생이라고 표현하지만 희생이 아니라 ‘허무한 죽음’이 될 것 같다”며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정말 1차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1년 사이 많이 달라졌다. 정부는 배ㆍ보상 논의만 되풀이하고, 함께 슬퍼하던 국민들은 둘로 나뉘어 유가족의 행보에 악플을 달았다. 언론 등에 노출된 윤아씨도 사생활을 잃었다
윤아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이를 ‘속죄의 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나라를 생명보다 돈이 우선이고, 안전하지 않은 나라로 만든 죄,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 우리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걷고 있다”며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은 ‘속죄받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1주기가 다가오지만 윤아씨와 가족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그들은 당분간 이 싸움을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윤아씨는“사람들에게 맞춰주는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됐다”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게 동생에게 미안해 오늘을 후회없이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내 동생에게 답을 후련하게 줄 수 있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지금처럼 계속 활동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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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최윤아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