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시장에서는 인기 절정이지만 국내에서는 유독 찬 밥 신세인 차종이 있습니다. 바로 해치백입니다. 해치백의 사전적 정의는 ‘차량에서 객실과 트렁크의 구분이 없으며 트렁크에 문을 단 승용차’입니다. 그래서 해치백을 5도어 차량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반대로 세단은 뒷좌석과 트렁크가 막혀 있는 차량을 뜻합니다.
사실 한국의 마이카 시대를 연 것은 해치백 모델들입니다.
국내 최초의 독자 모델인 현대차 ‘포니’<사진>가 바로 해치백 모델입니다. 1976년에 판매가 시작된 1세대 포니는 객실과 트렁크가 분리된 4도어 패스트 백이었으나 2세대 모델부터는 전형적인 5도어 해치백 형태를 보였습니다. 2세대의 경우 1990년 1월까지 36만3598대가 생산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 다른 우리나라 대표 해치백은 기아차의 ‘프라이드’입니다. 1987년에 출시된 프라이드는 1990년 프라이드 베타로 명명된 4도어 세단이 나오기 전까지 3도어 해치백과 5도어 해치백 두 종류가 판매됐습니다. 프라이드는 2000년 단종될 때까지 70만6128대가 판매되며 마이카 시대를 더욱 활짝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치백은 1990년대 들어 빛을 서서히 잃고 맙니다. 중산층의 부상으로 중형차, 특히 세단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차체 크기가 작은 해치백들이 푸대접을 받게 된거죠. 여기에 짐 차라는 이미지까지 더해지면서 차를 일종의 과시 수단으로 여겼던 한국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됩니다. 기아차가 1994년 출시했던 해치백 모델 ‘아벨라’는 6년 동안 겨우 1만8568대만 판매됐고 1996년에 선보인 기아차 세피아 5도어는 겨우 4654대만 팔리며 단종됐습니다.
그런데 해치백 외면현상에 대한 재미있는 분석도 있습니다. 바로 김치 등 냄새가 강한 우리 음식 때문이라는 겁니다. 택배가 발달하지 않은 1990년대만 해도 명절에 차를 가지고 고향에 가면 부모님이 김치나 젓갈 등을 바리바리 싸주셨죠. 트렁크에 한가득 싣고 돌아올라치면, 트렁크와 객실이 분리되지 않은 해치백 모델에선 음식 냄새가 차 안에 가득할 수밖에요. 이 때문에 해치백이 외면받고, 막혀 있는 세단으로 소비자들이 눈을 돌렸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해치백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를 공략하면서 다시 전성기를 노리고 있습니다. 해치백의 교과서로 불리는 폴크스바겐 골프는 국내 누적 판매 3만대를 바라보며 해치백 이미지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입니다.
현대차 역시 자사의 대표 해치백 모델인 i30의 2015년형을 지난 21일 출시했고 같은 날 아우디 역시 A3의 해치백 모델을 국내 출시하며 맞불을 놨습니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다양한 차종들이 도로를 수놓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과연 해치백 모델들이 과거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